몽골의 통치 아래 미술 양식이 대전환을 겪으면서 궁전 내 화원을 설치하지 않고 정부 기관에 화공을 배치하기도 했다.  고전주의를 꿈꾸던 원의 복고주의는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 최고 강국이었던 당대의 화려하고 진취적인 문화와 송대의 우아한 지성의 미를 꽃피운 예술문화를 당시의 회화 양식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러한 복고주의의 양식은 우수한 중국문화를 지양했던 쿠빌라이칸(1260년~1294년)의 통치 체제가 반영됐음을 의미한다.  조맹부는 송대 지식인이자 원대 관직, 궁정화가로 서예와 회화사에서 전통 회화에 강남의 유연한 서정성을 표현함으로써 후대 회화사에 그의 부인 관도승(管道昇)과 함께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그는 황공망(1269년~1354년)의 `부춘산거도`에 사상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송대 지식인의 강압적 복종 요구와 송-원의 20년 항쟁, 문인 정책의 취약함, 자유로운 문화의 흡수는 `원대 대표 화가`의 배출이 적은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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