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차창가에 펼쳐지는 정겨운 시골풍경, 사무실 맞은편 산에서 펼쳐지는 계절의 향연, 저녁산책길 강물에 비치는 아름다운 야경,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안겨주는 행복포만감이다. 스스로 복이 많다는 생각에 잠기다보면 누구에게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나는 복 많은 사람이라고 자족의 노래를 부르다보면 내안에 즐거움과 기쁨이 차오르고 엔돌핀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어릴 적 내 고향은 전형적인 시골마을로 감나무들이 온 동네를 덮고 있어 감나무 속에 집들이 잠겨있었다. 전화기도 없었고 TV는 마을 전체에 한집도 없었다. 우리 집엔 유일하게 라디오가 한대 있었지만 감나무 꼭대기에 안테나를 세워도 잡음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자란 내가 경주도심 남산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방마다 전화기가 있고 식구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갖고 산다. 텔레비전은 거실과 안방 두 대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집에 컴퓨터가 있어 내가 필요한 정보는 다 찾을 수 있다. 비록 감나무는 없지만 아파트 주변에는 과일가게, 마트가 있어 돈 몇 푼만 주면 언제라도 다양한 과일을 맛볼 수 있다. 전국 방방곡곡의 국산과일은 물론 심지어는 바다 건너에서 온 외국과일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온 가족이 승용차를 굴리며 수시로 고향을 드나들고 가족과 함께 전국의 유명관광지는 물론 심지어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이러니 어찌 복 많은 사람이라 하지 않으랴.
어린 시절 여름제사 때 친척들이 수박을 사들고 오면 샘물을 길어 담가 두었다가 차게 해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서 언제든지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또 더위를 식히려면 팔이 아프게 부채질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성능 좋은 에어컨이 있어 더위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는다.
겨울도 여름이나 다를 바 없다. 난방시설이 빈약하여 겨울철 밖에서 돌아오면 방안의 화롯불에 언 손을 녹이거나 아랫목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여야 했지만 지금은 아파트에 들어서기만 해도 훈훈하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속옷 차림으로 살 수 있는 게 요즘의 아파트다.
내 중학교 시절에는 펜으로 유리 병속의 잉크를 찍어서 글씨는 썼고 학교에 갈 때면 책가방 속에 잉크병을 넣어 다녀야만 했었다. 어쩌다 실수로 잉크를 엎지르면 노트와 책, 심지어는 교복까지 버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명품 만년필보다도 오히려 볼펜이나 사인펜을 사용하는 세상이다. 이런 필기도구들이 책상 서랍이나 연필꽂이에 즐비하게 꽂혀 있다.
학창시절에는 읽을거리가 참으로 귀했었다. 어쩌다 시골장터에서 소설책을 한권 구하면 첫 장부터 끝까지 밤새워 가며 읽었다. 그런데 지금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 달에 몇 권씩의 책이 배달되어 온다. 읽을거리가 모자라 목말랐던 내가 지금은 책 부자가 됐다.
내 어린 시절은 옷을 사 입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때 우리또래는 형들이 입던 옷을 대물림해 닳아진 부분을 기워 입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당숙댁의 재종 형들이 작아서 못 입는 옷을 가져와 입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철따라 바꿔 입을 명품 옷이 장롱에 즐비하다.
내가 고향에 살 때는 여간해서 쌀을 구경할 수 없었고 보리밥만 먹었다. 밥 먹을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 거지들이 찾아와 깡통을 내밀었다. 살찐다고 일부러 식사량을 줄이고 가급적 육식을 외면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은 직장에서 물러난 뒤 무료하게 보내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실업인구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나는 30여년 공직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직장을 얻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이 어찌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하지 않으랴.
사실 행복과 불행은 이웃사촌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나보다 나는 쪽을 바라보면서 나를 비교하면 나는 늘 불행하고 나보다 좀 모자란 쪽과 나를 비교하면 나는 늘 행복하기 마련이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글을 좋아하고 그 글을 즐겨 인용한다. 세상을 살다보니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서다.
어려운 시절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 같은 행복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나는 `복(福) 많은 사람`이라 고 자족하며 즐겁게 사노라면 그 행복 바이러스가 내 가족, 내 이웃에게 전파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있는 곳은 항상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오늘도 복 많은 사람이라고 자족의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