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따른 물가 상승을 뜻하는 히트플레이션이 이달 초부터 발생 조짐을 보이면서 서민들의 여름철 생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배추, 무 등 채소는 무더위에 시들고 수박은 한 통에 3만원을 넘는 귀한 몸이 됐다.
축산 농가에서는 집단 폐사가 잇따르고 있다.
에너지 수요는 올해 다시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냉방비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향후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13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5.5일로 이미 지난해 7월 기록(4.3일)을 넘겼다. 폭염일은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을 뜻한다.
농산물 가격은 불볕더위에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수박 한 통의 평균 소매 가격은 11일 기준 2만9115원으로 전월 대비 33.08%, 평년 대비 38.5% 상승했다. 서울 등에선 한 통에 3만원 이상인 매장이 흔하다.
더위에 약한 시금치는 100g당 1423원으로 전월 대비 75.9%, 평년 대비 10.48% 급등했다. 무는 전년보다 8.1% 저렴하지만 평년에 비하면 10.99% 비싸졌다. 특히 11일 하루 동안 8.74% 치솟는 등 더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축산물값도 불안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은 돼지 2만마리, 가금류(닭, 오리 등) 50만마리에 달했다. 한여름 폐사가 더 늘면 축산물 수급 불안정이 우려된다.
여름철 폭염이 물가를 밀어올리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주기적으로 재발해 왔다.
앞서 현대경제연구원이 폭염이 길었던 과거 16개 연도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의 평균 하반기 물가 상승률은 상반기를 0.2%포인트(p) 웃돌았다.
특히 농축수산물의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상반기보다 0.5%p 높아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폭염은 밥상물가만 끌어올리지 않았다. 가공식품·외식물가 상승률도 하반기 들어 상반기보다 각각 0.6%p, 0.2%p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폭염이 드물었던 15개 연도는 상·하반기 물가 추세가 뒤집혔다.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반기보다 0.3%p 낮아졌고, 농축수산물의 경우 0.8%p나 더 낮았다. 가공식품·외식 물가 상승률도 하반기에 0.7%p, 0.5%p 빠르게 내려갔다.
무더위가 자극한 식료품 물가 불안은 갈수록 공산품·서비스 등 물가 전반에 확산한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특히 더위가 물러가는 9~10월에도 추석 명절로 인한 수요 증대와 맞물려 서민들의 물가 부담을 더하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전력수요 증대에 따른 전기료 부담도 우려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폭염 기간 최대 전력수요가 94.1∼97.8GW로, 지난해 사상 최고 기록(97.1GW)을 갈아치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정부는 7~8월 두 달간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전국 1773만가구의 부담이 줄고 가구당 평균 1만8000원의 요금 경감이 기대된다.
정부는 이번 3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했으나 오는 4분기 같은 결정을 내릴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생계비 부담 완화나 에너지 요금 동결 등 주로 단기 대책을 처방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상 이변에 더욱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추석 물가 부담 등 서민 생활고를 근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