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대가는 한족 문화의 가치를 높여줬으며 마술사 영역에서 풍부한 융합예술을 보여줬다.
당인(唐寅, 1470~1523년)과 구영(仇英, 1494~1552년)은 오문화파 중에서도 다른 화풍을 보여줬으며 직업 화가로 개성 있고 숙련된 기량의 사실적 묘사와 폭넓은 주제의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당인은 호가 육여거사로 명 말기 보수적 사실성을 답습했으며 기량이 뛰어났다. 평생 자유인으로 호방하고 속박받지 않는 삶을 살았다.
독자적 예술세계를 개척한 그의 작품에서는 강냠풍류 재자(江南風流材子) 낙관을 볼 수 있다.
제화시 일부를 보자.
"꽃 속에 즐기다가 달 아래 잠을 잤다. 나라 안에 내 이름 두루 퍼졌지만, 누가 알랴 내 허리춤에 술도 돈도 없는 것을".
구영의 채색화는 명대에도 저명했으나 그는 현대에서도 선호되는 작가이다.
호가 십주(十州)이며 원대 화가의 필법을 사용해 정교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궁정 생활을 잘 묘사했다.
그는 청록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고대 서화가의 장점을 가졌고 미술시장에서 인간사의 희구를 충족시키는 그림으로 다수의 작품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