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 회화의 제재가 다양했다.  산수, 인물 화조화가 매우 풍부한 지식인에 의한 학문 교류의 장이 됐으며 인문학 성향의 문인화가 더욱 발전했다.  지역 간 운하를 통한 경제적 활성과 대외적인 상업의 부흥은 다양한 회화예술을 발견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송대 황제의 예술지상주의 성향과 관리들의 높고 풍부한 교양은 예술적 향유를 추구했다.  풍속화가 많이 그려지고 송대 활성화된 차(茶) 문화의 투다(斗茶) 장면과 관리들의 차연회의 장면들이 시대상을 반영한다.  당대 산수화에 비해 송대는 사물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고 작가의 정신과 감정 전달을 중시했으며 크기 변형을 통한 고저(高低)에 따른 무궁유한의 경계가 송대 회화사에 경유진이의무궁(景有盡而意無窮)으로 이어졌다.  문인화가 중 북송 이공린(1049~1106년)의 인물화는 성격, 나이를 느낄 수 있는 표현으로 유명했으며 대표작으로 오마도, 유마거사상 등이 있다.  소동파, 문동, 미불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글과 그림, 낙관과 어우러져 이지적인 성향을 이끌어 냈다.  승려 중인의 `화광매보`, 범성대의 `범성매보`, 송백인의 `매화희신보` 등의 화보가 발간되고 사군자의 생태적 특성이 문인의 지성과 어울려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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