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고향 집 마당 구석에 돼지우리가 있었다. 나는 수년간 남은 음식물을 돼지밥으로 갖다주면서 돼지가 커가는 걸 지켜보았다. 돼지는 서늘하고 축축한 환경을 좋아한다. 그리고 항상 물이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돼지는 인간처럼 잡식성이다. 돼지는 개처럼 탄수화물을 잘 소화시킨다. 개와 돼지가 야생에서 가축화된 지 가장 오래된 동물 1·2위인 이유다.
할랄로 지정된 양과 소는 초식성(草食性)이다. 또한 양·소·염소는 방목이 가능한 반추동물이다. 소의 주식인 여물은 말린 짚이다. 수분을 증발시킨 섬유질이다. 소는 되새김질로 섬유질을 소화시킨다. 반추동물은 아니지만 닭은 똥집으로 불리는 모래주머니로 삼킨 곡물을 소화시킨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양, 닭, 소는 인간과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돼지는 방목이 불가능하다. 사람 손길이 많이 간다. 돼지는 인간과 탄수화물을 두고 경쟁을 벌인다. 건조한 사막지대에 주로 살던 이슬람교도에게 양돈(養豚)은 환경적으로 불리했다. 투입되는 비용 대비 생산성이 너무 낮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운 것도 없다. 그럴 때 그 대상을 아예 `먹지 못하는 것`으로 규정하면 속이 편해진다. 결국 이슬람교는 돼지를 금기로 묶는 교리를 만들기에 이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말년의 저서 `토템과 터부`에서 여러 문명권에서 터부가 생성되는 과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밝혀냈다. 권력을 쥔 지배 집단이 한쪽을 터부시함으로써 대립하는 욕망의 충돌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종교적 터부로 묶으면서 무슬림의 돼지고기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 마빈 해리스는 이슬람의 돼지고기 터부를 프로이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분석한다. `비용-이익 관계`라는 분석 틀을 사용한다. 사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동물성 단백질의 양(量)이다.
동유럽 근방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여전히 소나 염소 같은 반추동물을 사육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 왜냐하면 돼지는 인공적으로 그늘을 만들어주고 물이 있는 웅덩이를 만들어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주어야 하고 곡식과 같이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한 음식들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유럽 근방은 이슬람 문명권의 북방 한계와 겹친다.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돼지를 키우고 싶어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여러 문명권의 식문화와 관련된 금기들은 그 연원을 파고들면 기후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 문화적·종교적 관습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공동체의 음식문화가 오랜 세월을 전승되면 그것은 역사를 넘어 DNA가 된다.
이슬람 집안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종교선택권이 없다. 그와 함께 그들은 어려서부터 돼지고기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세뇌·학습된다. 무슬림에게 돼지고기는 곧 나쁜 음식의 대명사다. 이슬람권의 중국식당에서도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가 없다.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1942~2016)는 1964년까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 그가 영어 이름을 사용할 때는 돼지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그러나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이슬람식 이름 무하마드 알리를 쓰고부터는 교리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난삼아 무슬림에게 일부러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게 하고 나중에 이를 알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돼지고기"라는 소릴 듣는 순간 무슬림은 얼굴이 노래지고 경기를 일으킨다. 물론 `돼지고기` 소리를 안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겠지만. 반복 학습과 세뇌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카타르월드컵 최종 예선이 한창이다. 한국과 일본이 카타르행(行) 티켓을 따려면 이슬람 벽을 넘어야 한다. 아시아 축구 최강은 피파(FIFA) 랭킹 22위 이란이다. 그러나 이슬람국가에서 여성들은 오랜 세월 축구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종교적 이유에서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부분적으로 허용한 게 5년도 되지 않았다. 여성의 축구장 입장 불가를 교리로 만들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
제발, 돼지를 욕하지 마시라. 돼지가 무슨 해를 끼친 적이 있나? 돼지처럼 고마운 동물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러나. 돼지를 탐욕의 상징으로 매도하지 말라. 돼지는 자기 배만 부르면 더는 탐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그러지 않는다.
삼겹살을 구울 때 "지지직"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나는 침을 꼴깍거린다. 삼겹살을 소울 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 사람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삼겹살을 먹어줘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날씨가 추워지면 몸이 칼칼한 돼지 김치찌개를 부른다. 김치찌개에는 역시 두툼하게 썬 목살이 들어가야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