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술사에서 서법(書法)의 유연성은 예술 작품에 토대가 됐다.
옛 거장들의 그림을 화원의 문인화가들이 방(倣)하면서 가치 있는 범주에 함께 공감했다.
또한 불교의 불상 도석화와 산수화, 풍속화 등의 다양한 소재들을 접했다.
단일 기법인 백묘법(白描法)의 발자취를 그림 작품을 통해 감상하고 자연 사물의 형상을 예술가의 감각으로 이룩하게 된 안목에 대해 후대의 화론가들은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수광(지봉유설)의 글 중 "장자의 말에 뜻을 한 곳에 쓰고 딴 데로 나누지 않으면 곧 신(神)의 경지에 들어간다"라고 했다.
동진(東晉)의 고개지 당대(唐代) 왕유를 거치면서 인물화의 부드러운 곡선, 먹의 농담, 선의 강약을 통해 백묘기법(白描技法)의 초기 변화 발전의 토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