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긍정적으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 들어서 시작한 일에 깊이 빠진다는 속담이다. 늦은 나이에 도전한 일이니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박완규(사진·70) 수필가에게 잘 어울리는 말로 늦게 시작한 글쓰기로 각종 문학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보도자료 쓰다 수필가 되다
박 수필가는 지난 2021년 경북문예진흥금 대상자로 선정돼 「나는 복 많은 사람」이라는 첫 수필집을 발간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가 왜 복 많은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어릴적 가난하게 자라 초년 고생이 많았고 보잘것없는 삶이라 생각했는데 지금껏 살아온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니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표제의 제목을 설명했다.
그는 경주시청 보도지원반장으로 2007년 명예 퇴임했다. 30여년의 공직생활 중 공보업무 담당부서에서 15년간 보도자료 작성해 온 것이 문학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정년 후 취미생활을 위해 1998년 경주문예대학을 찾아 본격적 글쓰기 공부를 시작해 수년간 틈틈이 수필을 쓰기 시작해 2006년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때 "보도자료 쓰다 수필가 됐어요"라는 말이 회자되며 언론매체로부터 집중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경주수필가협회, 경주문인협회 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문학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사회복지법인 불국사복지재단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경주문인협회 지부장 재임기간 동안 `동리목월문학관`을 맡아 운영했고 `김동리 선생 문학 기념비`를 건립하는 등 경주의 문학발전 및 저변 확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글쓰기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다
박 수필가는 "등단 15년만에 첫 수필집을 상재하게 됐다"라며 "변변치 않지만 나의 족적을 담은 글들로 특히 유년의 추억들 하나하나는 귀중한 문학의 자산이었고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수필집은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삶의 무게를 팽팽하게 견뎌낸 그의 70여년의 진솔한 삶이 담겨 있다.
넉넉한 문학의 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유년시절의 추억`, 인생 일흔의 길목에선 `가을날의 상념`, 건강을 위협하는 `고혈압 유감`, 1974년 고향 청도를 떠나 `타향도 정들면`,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물같이 바람같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등단작품` 등 68편의 작품을 7개의 소제목으로 나눴다. 수필집에는 가족들의 사진과 최복은 화백의 작품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아들 박종휘씨는 "아버지의 글은 비록 대단한 문장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많이 쓸수 있는 글이고 어렸을때부터 길러온 문학의 꿈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마침내 꽃피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라며 아버지의 첫 수필집 발간에 존경과 사랑의 글을 덧붙였다.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박완규 수필가가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덕담을 했다. `덕화만발(德華滿發)` 복을 많이 짓는 사람이 곧 `복 많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김희동 기자press8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