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구룡포와 호미곶을 꼽는다. 최근에는 이곳 동해안에는 과메기문화관과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 조성돼 지역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구룡포(九龍浦)라는 지명은 신라진흥왕 때 장기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龍珠里)를 지날 때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가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가 승천한 포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용두산 아래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이 소안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이 동해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승천했다고 해서 구룡포라고 불러졌다고 한다.
이곳 구룡포는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꼬리(虎尾)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응암산(鷹岩山, 158m) 아래 형성된 구룡포만(九龍浦灣)을 끼고 있어 동해안의 중요 어항으로 발전돼 왔다. 조선후기 때만 하더라도 조그마한 어촌마을에 지나지 않았으나 1906년 이후 일본인의 이주와 왕래가 잦아지면서 마을세가 크게 신장되기 시작했다. 그 후 1909년 일본 오사카(大阪)의 `유어조(有漁組)`가 구룡포항에 사무소를 설치한 이후부터 일본인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13년 말에 도로를 새로 내고 시가지를 정리해 1914년 4월에 관광서가 들어서게 되자 일본인들의 발길이 더욱 분주해 졌다.
구룡포항은 1923년에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당시 구룡포는 청어, 오징어, 방어 등의 어장으로 유명해 많은 어선이 출입하고, 또 수산가공제품과 함께 수산물 수출항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구룡포는 어업전진기지의 이미지는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나가던 개도 1만원을 물고 다닌다는 얘기가 나돌던 구룡포가 어자원이 고갈되자 1974년 인구 3만3614명에서 지금은 8483명(8월말 기준)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과메기산업특구로 지정된 이후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메기를 특화·명품화해 주민소득 증대와 함께 침체된 수산업의 활력을 찾고 이를 관광산업과 연계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여름이면 구룡포해수욕장에서 해마다 열리는 오징어 맨손잡기체험행사를 비롯해 장길리 복합 낚시공원, 근대문화역사거리, 지난해 개관한 과메기문화관 등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새로운 도약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읍에 자리하고 있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일제강점기 때 수산물 확보를 위해 진출한 일본인 어부들이 부(富)를 축적한 뒤 상인(商人)으로의 신분 변화를 하면서 자리를 잡고 거대한 규모의 상가를 이뤘던 골목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식 가옥 50여 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인 집단 거류지였던 장안동 골목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직도 일본풍이 물씬 풍겨난다.
실제로 수년 전 모 방송국의 인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거리 촬영 때 이곳 구룡포 읍내 장안동 골목이 촬영 세트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1900년대 초반 한국 속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자동차가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빽빽이 들어선 가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태가 양호했으나 태풍 매미로 인해 상당수가 훼손됐다. 지금은 시멘트나 알루미늄 새시로 대충 보수를 해 그 모습이 예전만 못하지만 느낌만은 그대로 전해진다.
일본가옥 뒤로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구룡포공원으로 불리는 이 공원은 원래 일본인이 세운 신사와 조선총독부에 구룡포 개발을 제안한 일본인 도가야 야사브로의 송덕비가 있었다. 해방 이후 구룡포 청년들이 신사를 부수고 송덕비에 시멘트를 부었다. 지금은 충혼탑과 충혼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특히 공원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양쪽에 비석을 세워놓았는데, 비석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일군수 김우복, 영일교육감 임종락, 제일제당 구룡포통조림공장, 하사룡, 이판길 등과 단기 4393년(1943) 7월에 세웠다는 기록도 보인다.
일본인 가옥거리 끝자락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이 있다. 이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 가옥이다. 그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해 부를 쌓은 사람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운반해 건축했다고 한다.
이 가옥을 포항시가 매입해 최근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건물 내부에 `부츠단`, `고다츠`, `란마`, `후스마`, `도코바시라` 등 일본의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1, 2층 전시장에는 녹이 슨 재봉틀과 다리미, 군데군데 찢어진 창호 등 낡은 일본 유물들도 10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건물은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의장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어 한국과 일본건축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그 가치가 크다.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일본인 가옥 거리 뒤 공원 위쪽에는 포항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이 세워져 있다. 7678㎡ 부지에 포항시가 125억 원을 들여 연건축면적 5071㎡, 지상 4층 규모로 건립했다.
문화관이 들어선 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세웠던 심상소학교였으나 해방 후 동부초등학교로 변환해 사용하다 폐교가 된 자리다.
구룡포과메기 산업특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과메기 문화관은 과메기의 체계적인 연구 및 품질관리를 하는 연구센터와 과메기 홍보관, 해양생태관 및 각종 체험시설 등을 갖췄다.
1층에는 특산품판매장과 다목적전시실, 체험교실이 마련돼 있고, 2층은 해양체험관, 과메기연구센터가 들어섰다. 또 3층에는 과메기 홍보관과 과메기 문화관이 설치돼 과메기 산업과 음식 등을 소개하며, 4층은 포항운하를 출발해 구룡포항에 도착하는 가상 제트스키와 야외전망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종훈 기자leejonghoon@naver.com 이형광 기자cde123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