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자락에는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절이 꽤 많다. 그 가운데 초암사·비로사·성혈사·흑석사 등의 절들은 의상이 화엄의 뜻을 펼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규모가 크지도 않고 유명세를 타지도 않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흑석사에는 통일신라 전성기의 특징을 잘 간직한 석조여래좌상이 있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영주에는 흑석사 석조여래좌상 뿐만 아니라 가흥리 마애불, 신암리 마애삼존불 등 석불도 많다, 긴 세월을 지켜온 불상들을 둘러본다. ◆영주 흑석사 흑석사(黑石寺)는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석포리 200)에 위치하는데 골짜기로 둘러싸여 매우 아늑해 보이는 곳이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창건한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며, 통일신라 전성기의 특징을 잘 간직한 보물 제681호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중기 초까지는 꽤 크게 사세를 유지했다가 임진왜란 때 폐찰 된 뒤 1945년에 이르러서야 초암 김상호 스님에 의해 중창해 오늘에 이른다.  흑석사라는 이름은 절 가까운 마을이름을 흑석이라고 부른데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지며, 또 마을 뒤편 산자락에 검은 빛깔의 커다란 바위가 있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 사찰에는 석가모니 정골 진신사리가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피해 정암산(井巖山) 법천사(法泉寺)에 있던 아미타여래좌상을 초암사로 옮겼다가 다시 이 절로 옮겨 모시게 됐는데, 개금불사를 하려고 보니 배 안에서 법신 정골 진신사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아미타여래좌상과 이 진신사리 및 사리함, 경전 등 복장유물은 국보 제282호로 지정돼 있다. 목조불인 아미타여래좌상은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고 불상이 자리하던 극락전에는 사진만 모셔 놓았다. 이곳 극락전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석조여래좌상을 만난다.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681호인 석조여래좌상은 높이 160㎝, 어깨 폭 80㎝, 무릎 폭 90㎝이다. 온화한 얼굴, 단정한 자세, 비례가 잘 맞는 신체를 보여주지만 얼굴에 비해 어깨가 좁고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좁아 당당하기보다는 다소곳하다는 인상을 준다.  상호는 매우 균형 잡힌 모습으로 인자한 모습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결가부좌한 자세에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보아 통일신라시대 9세기경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절 근처에 매몰돼 있던 것을 발굴해서 모셔놓은 것이다. 불상 뒤의 암벽에는 마애삼존불상이 조각돼 있다. ◆마애삼존불상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인 이 마애삼존불상은 자연 상태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 협시 보살상으로 구성돼 있다. 삼존 모두 입상이지만 가슴께 위쪽으로는 비교적 잘남아 있으나 그 아래쪽은 조각이 모호하다.  가운데 본전불의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좌우 협시 보살상은 모두 둥근 두광(頭光)에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오른쪽협시에 비해 왼쪽협시의 얼굴이 더 넓게 표현돼 있는 모습이다. 제작연대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가흥동 마애여래삼존불상·여래좌상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과 여래좌상은 가흥동에 자리하고 있다.  서천을 굽어보고 있는 바위면 한가운데에 새겨져 있는 듬직한 좌상은 앉은키가 2.5m쯤 되고 머리 뒤의 광배까지 하면 3m가 넘는다. 양쪽에 아담한 협시보살들은 어른 키 정도이며, 광배까지의 높이는 각각 2m와 2.3m로 큰 편이지만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보물 제221호로 지정돼 있는 이 삼존상은 돋을새김이 매우 높아서 바위에서 잘 드러나도록 한 그 정성 또한 예사로 볼 수가 없다.  본존불은 두툼한 옷자락이 덮인 어깨가 듬직한데 한 손을 올리고 한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내보여, 두려움을 물리치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 앞가슴 옷자락은 흘러내려 U자 모양을 이루고, 머리 뒤의 광배 조각이 매우 아기자기한 가운데는 겹잎의 연꽃잎이 활짝 펼쳐지고 바깥으로는 화불 다섯 구가 돌아가며 배치돼 있다.  광배의 왼 바깥쪽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게 타오르는 불꽃모양이 조각돼 있으며, 옆으로 좀 돌아가서 보면 광배면의 불꽃 끝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숙이고 있는 형상이다.이와 같은 수법은 인접한 봉화 북지리 마애불과 매우 닮은꼴이어서 당시 이 고장 사람들이 소망한 부처님의 모습이 이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협시보살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했는데 그 밑으로 천의는 X자 모양으로 교차해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보인다. 몸의 자세가 좀 더 유연한 오른쪽 보살은 한 손은 올리고 한손은 내린 자세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두 보살의 인상이 부드럽고 귀염성 있어서 비슷하다.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들녘 구석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표시판을 잘 보아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보물 제680호로 지정된 이 삼존불은 본래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사면석불이었으나 남쪽면의 삼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고 북면에는 머리 부분만 어렴풋하며 서면은 거의 흔적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높이가 2.5m, 너비 3m쯤 되는 화강석에 새겨졌는데, 본존불은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은 비스듬히 내린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큼직한 육계가 얹힌 얼굴은 비바람에 많이 닳아 자세한 형체는 알 수 없지만 갸름한 얼굴에 긴 귀만 확인된다. 머리 뒤에 새겨진 광배는 불꽃 모양이 꽤 선명하고, 광배까지 드러난 높이는 모두 1.38m이다.  양쪽 협시보살은 비바람에 더 많이 씻겨서 형상을 낱낱이 말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오른쪽 보살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한 자세이고 왼쪽 보살은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배 근처에 놓았다. 양 협시보살의 높이는 오른쪽이 1.23m, 왼쪽은 1.22m이다.  이 삼존석불은 대체로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고 있고 배치나 자세, 인상이 가흥동 마애삼존불상(보물 제221호)과 비슷하다. 그래서 조성연대도 대체로 신라말기에서 통일기로 접어드는 7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종훈 기자leejonghoon0@naver,com 류효환 기자ryuhh808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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