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을 비롯한 전국 농촌의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농작물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경북 지역의 경우 사과, 포도, 자두, 복숭아, 인삼 등 주요 과수 작물들이 모두 비상등이 켜졌다. 농민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현재 사과는 정상적인 성장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폭염으로 과육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크기가 평년보다 20%가량 작고 수확량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두와 복숭아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 고온으로 익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져 수확 시기가 예정보다 앞당겨지고 낙과가 속출하고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칠 경우 농가들은 추가적인 손실을 피할 길이 없다.
포도 농가들은 더 절박하다. 포도는 33도 이상의 고온에서 `축과병`과 같은 병해가 쉽게 발생하며 잎이 햇볕에 타들어 가는 `일소현상`으로 인해 생육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상품성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인삼은 고온에 극도로 취약한 작물로 폭염이 지속되면 대량 고사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가뭄은 이제 농민들에게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농민들은 해마다 "이번만 넘기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와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삶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는 대책은 대부분 단기적 처방에 그치고 있다. 경북농업기술원이 현장기술지원단을 급파해 배수로 정비, 관수 확대, 미세살수 장치 가동, 차광막 설치 등 긴급조치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에 불과하다.
땜질식 지원으로는 농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농업 정책의 대전환 없이는 앞으로도 같은 재난이 되풀이될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농업을 단순한 `1차 산업`이나 `생계 수단`으로 여기던 시대는 끝났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농업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농촌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최전선으로 인식해야 한다. 스마트 농업 도입을 적극 지원하고 가뭄·폭염에 강한 작물 개발과 재배기술을 확산해야 한다. 농업 재해보험의 보장 범위와 지원 수준도 대폭 강화해 농민들의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특히 경북처럼 농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은 정부가 직접 나서 국가 단위의 특별지원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상기후에 취약한 작물의 재배 구조 개선, 농업용수 공급 기반 확충, ICT 기반 스마트팜 지원, 시설농업 전환 등이 시급한 과제다. 폭염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절규는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농민들이 땀 흘려 키운 과일 한 알, 곡물 한 톨은 국민 식탁을 지키는 소중한 자산이며 국가 경제의 근간이다.
농업이 무너지면 식량 자급률이 추락하고 이는 곧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는 재난이 닥칠 때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같은 사후지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사전 예방과 근본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 농촌을 기후위기 대응 산업으로 육성하고 농민들이 `기후 재난`을 넘을 수 있는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폭염으로 타들어가는 농심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농업정책의 체질을 바꾸고, 농민을 지키는 장기적 해법을 마련할 마지막 기회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모두가 농민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농업을 살리는 길은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