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아리랑 도시`를 선포한 지방자치단체다.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서 우리 민초들이 희로애락을 느낄 때 부르는 노래이며 제2의 국가(國歌)와도 같은 민족의 노래이다.
우리 문경에도 오랜 세월 동안 불리어왔던 `문경새재아리랑`이 있다.
이 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며 실제적 아리랑고개가 `문경새재`라고 하면 무슨 소리를 하나?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이 주장에 대해 근래 학계나 민요계에서는 점차 인정하는 추세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은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로서 백두대간을 따라 출현한 메나리토리 아라리로부터 시작됐다.
토속민요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변환되는 변곡점에 있었다.
그리고 아리랑이 조선 팔도로 널리 확산하게 된 그 뿌리를 찾아가면 근대 아리랑의 종주 격인 문경새재아리랑이 있다.
아리랑과 불가분의 관계인 1865년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와 문경새재와 물박달나무와 문경새재소리가 얽힌 역사, 그리고 1912년 문경지방 초등학교 교사에 의해 총독부에 보고 기록된 `문경풍년아리랑`은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바뀐 최초의 기록이다.
이런 흐름에 영향받아 1896년 역사 이래 최초로 아리랑 악보로 쓰이고 해외에 알려진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라는 사설이 들어 있는 `헐버트 아리랑`의 발표와 1926년 큰 인기를 끈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 기폭제가 됐다.
그릭 1930년 영남의 30개 시·군을 대상으로 조사, 정리한 대구 출신 국학자 이재욱이 쓴 `영남전래민요집`이 발견돼 세상에 알려진 이후 문경새재아리랑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돼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성 위에 송옥자 회장이 2001년부터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전승 및 보급 활동을 하고 있고 1980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과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의 `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적, 민요사적 연구`를 거듭한 성과에 의해 그 사실들과 중요성이 점차 입증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