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렁! 날카로운 금속음이 한밤의 고요를 갈라놓는다. 뒤이어 터지는 여인의 소프라노 비음. 301호에 세든 젊은 부부다. 자정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건물을 뒤흔드는 소란에 기어코 깨어나고 말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는 원룸에서는 이처럼 얘기치 않은 일들이 자주 발생하곤 한다. 너나없이 사는 형편이 어렵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잠을 설치는 날은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원룸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평생 모은 예금과 퇴직금을 몽땅 털어 부었다. 이른바 노후대책의 일환이었다. 알프스의 별장 같은 4층 원룸은 나의 취향을 닮아 유럽풍으로 지어졌다. 상당히 복고적이라 주변의 특징 없는 원룸과는 확연히 구별이 됐다. 입구의 마당은 작은 정원으로 꾸며졌고 한쪽에는 햇살좋은 날 무지개를 뿜어 올리는 분수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4층을 제외하곤 모두 15개의 방이 있다. 각 층마다 투 룸이 하나씩 있긴 하지만 방이 두 개라는 점 외엔 원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4층까지 계단에는 철따라 세르비아며 수선화 등이 심어진 화분으로 단장되었다. 그러니까 원룸은 상당히 클래식 하고 또 모던하지만 그러나 여기에 세든 사람들이 다 그런 주인의 취향을 닮은 것은 아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여기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둥지입니다`란 글귀가 한쪽 벽면에 자리하고 있다. 고객을 내 식구처럼 배려하겠다는 남편의 따뜻한 정이 담겨있는 문구이다. 원룸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일 년이 기한이기 때문에 처음 만나 서로 얼굴을 트고 정이 들려고 하면 어느새 이별이다. 그러나 함께 사는 동안은 내 집처럼 편안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철학으로 원룸의 캐치프레이즈를 이렇게 정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을 찾아온 이들에게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둥지가 되어주고 싶었다.
근래에 새로 개발된 변두리 지역의 이곳은 깔끔한 도심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이다. 다세대 가구단지와 원룸이 밀집돼 있어 언제나 왁자지껄하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떠나갔다. 이혼을 하고 찾아온 중년의 남자, 어린 딸을 혼자 키우던 젊은 여자, 단칸방을 전전하던 노부부, 자취하는 대학생, 술집에 나가는 아가씨 등등.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갔다. 삶에, 사랑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껴안고 잠이 들던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한다. 지금 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햇살좋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면 문득 떠나간 얼굴들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원룸이란 인스턴트 시대가 낳은 물질문명의 사생아인지도 모르겠다. 컵라면을 끓이듯, 햇반을 데우듯 원룸은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방편의 휴식처인 셈이었다. 그러나 원룸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무엇보다 그들의 땀 냄새가 진솔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의 눈물과 한숨과 고통과 희망이 적나라하게 숨 쉬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원룸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참모습을 비춰주는 정직한 거울이 아닐까. 원룸 사람들의 삶은 거칠지만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 주저앉지 아니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 저녁 어린 새들처럼 원룸 안에 웅크리고 잠든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일주일이 멀다않고 부부싸움을 하던 사람, 고래고래 술주정을 하던 여자, 가난 때문에 실연을 당한 총각, 고아원 출신의 아가씨, 늙은 노부부. 깃털이 조금씩 빠진 상처 입은 새들은 어쩌면 내일이라도 홀연히 이곳을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저마다의 사연을 머리맡에 내려놓고 잠들어 있는 창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선량하고 행복해 보인다. 선잠을 깬 나는 골목에 서서 원룸을 바라본다. 창 너머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