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내수 경제가 저출생, 고임금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장기 하락 국면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내수 소비 성장률은 지난 1996년 정점을 찍은 뒤 29년간 꾸준히 낮아졌고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3일 국내 내수시장의 중장기 데이터를 분석한 `내수 소비 추세 및 국제 비교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코로나19, 인플레이션 등 단기적 요인이 아닌 인구, 고용, 산업 등 구조적 요인이 중첩돼 내수 시장이 쇠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객관적 데이터로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수 소비 연평균 성장률은 지난 1988~1996년 9.1%로 최정점을 찍은 이후 4번의 충격을 기점으로 계단 형태로 뚝뚝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4.5%(1997~2002년)로 반토막이 났고 2003년 카드대란 이후엔 3.1%,(2003~2007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2.4%(2008~2019년), 2020년 코로나19 이후에는 1.2%로 하향했다.
GDP 대비 내수 소비 비중도 감소 추세다. 내수 비중은 2002년 56.3%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보여 2021년 코로나 기간 중 47.1%까지 떨어졌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승용차와 전자제품 확산, 소비 활성화 등으로 소비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 2002년에는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하락추세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 한국 내수 비중은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8위에 그치고 있다. 경제 규모가 1조달러를 넘는 12개 국가 중에서는 11위를 기록해 네덜란드 다음으로 낮다. 우리나라보다 내수 소비 비중이 낮은 국가는 이스라엘, 체코, 스웨덴, 룩셈부르크 등 인구 1000만명 이하의 내수시장뿐이다.
보고서는 내수 소비가 부진한 주요 원인으로 `고령화`와 `가계 자산의 부동산 집중 현상`을 꼽았다. 인구피라미드가 역삼각형으로 변화한 가운데 고령층의 소비성향이 감소해 전체 내수시장이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00년 7%에서 2024년 20%까지 빠르게 증가한 반면 이들의 평균 소비성향은 81.3%에서 64.6%로 하락해 전 세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5%, 임대보증금까지 포함한다면 77.3%로 매우 높은 편이다. 여기에 가계부채와 그에 따른 이자 부담도 늘고 있다. 가계 신용은 2002년 말 465조원에서 지난해 말 1927조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증대된 점도 소비 심리를 옥죄고 있다.
대한상의는 내수 부양을 위한 단기 해법으로 `공격적 경기부양(Recession Attacking)`을 제안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에서 제안됐던 방식으로 단기 경제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산업 인프라와 같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는 정책이다.
국내에서도 1999년 `사이버코리아 21`이 유사한 해법으로 추진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IMF 관리체제 아래에 있던 상황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전자상거래 육성에 나섰고 그 결과 2000~2005년간 GDP가 연평균 5% 성장할 때 정보통신산업은 1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통신업, 사업서비스업의 취업자 수는 61만9000명 증가해 전체 취업자 증가 폭(165만8000명)의 37%를 차지했다.
정부는 그동안 소비심리 회복을 위한 단기 처방이 반복돼 왔지만 소비 둔화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 만큼 이제는 미래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더불어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