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중에서 묵죽(墨竹)은 그리기 어려운 그림으로 원대에 특히 애호됐다.
대나무를 처음 그린 것은 육조시대로 당대에는 대나무 그림이 등한시되다가 북송대 문동(1018년~1079년)과 소동파(1036년~1101년)에 의해 조명됐다.
문동이 묵죽을 치면 소동파의 시제가 그에 어우러져 묵죽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원대에 예찬 조맹부에 의해 묵죽이 완성된다.
묵죽은 원대 은거 생활하며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등 돌리며 독립된 생활과 자연의 영감을 표현하던 문인들에게 적합한 주제였다.
군자와 절개의 상징으로 잘 휘어지는 특성은 역경에 굽힐망정 절대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나타냈다.
당시 그려지던 대나무의 표현을 보면 우아한 줄기, 칼끝과 같은 날카로운 잎,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마디 등을 관찰해 줄기, 잎, 위치를 분명히 표현하고 농담에 변화를 줬으며 이에 따라 그려진 여백 미와 강인함이 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