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1129일간의 전쟁 6·25.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남북분단과 정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6·25 전쟁의 상흔은 오늘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더욱이 많은 젊은 세대들은 6·25 전쟁이 왜, 언제 일어났는지 조차 모르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신녕지구전승비  1950년 8월과 9월 사이 42일간 치열하게 벌어진 국군 제2군단과 인민군 제2군단 간의 전투에서 승리한 인민군을 북쪽으로 퇴각시킨 육군 제6사단 청성 육탄 용사 및 전몰 영령들의 멸사봉공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1958년 10월 30일 육군 제1205 건설공병단이 건립했다.  비의 상부에는 독수리를 형상화해 올렸는데 마치 진짜 독수리가 앉아있는 듯하다.  비신(碑身)의 전면 상부에는 별 모양을 박아 놓고 그 아래에 동판으로 된 비명 판을 세로로 붙였다.  기단의 높이는 2.5m이고 비의 높이는 7.5m이다.  평면 정방형의 비신은 그 폭이 60㎝이다. ▲영천지구전적비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은 군민과 합세해 1950년 9월 9일 총반격전을 감행해 금호강에서 적을 포위 섬멸함으로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의 위기를 오히려 북진의 기회로 만들었다.  영천지구 전적비는 마현산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약 330㎡ 규모의 부지에 2중의 높은 계단을 통해 전적비 앞마당에 이른다.  마당은 평평하게 화강암 판석으로 바닥을 깔고 약간 뒤쪽으로 치우쳐 국군 동상을 조각한 비를 중앙에 세우고 그 뒤에 `ㅅ`자형의 화강암 판석을 붙인 조형물이 앞의 비를 기준으로 서로 대칭되게 세워져 있다.  전적비는 상부에 청동으로 조각해 주조한 국군 동상이 있다.  동상의 형태는 오른쪽 허리춤에 총을 받치는 경계 자세를 취하고 늠름하게 서 있는 국군이 쓰러져가는 다른 국군을 무릎에 기대주고 있는 형상이다.  1980년 10월 7일 백문기 조각가가 설계와 조각을 하고 건설교통부에서 건립했다.  그 밖에 6·25 현충시설로 전쟁 당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1250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에 건립된 충혼탑과 1958년에 건립한 영천지구전승비가 있다.  고경면 호국로 육군3사관학교 내 충혼비는 월남전, 대침투작전, 생도훈련, 전·후방 야전부대 교육훈련 및 시범 등 조국을 위해 산화한 육군 3사관학교 임관 장교들의 희생정신을 길이 받들고 호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건립했다. 이곳에는 1970년 소대장 임무수행중 소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수류탄을 덮어 전 소대원을 구하고 산화한 육군 3사관학교 임관 장교 1기인 고 차성도 중위 충혼비가 있다. 김희동 기자press88@hanmail.net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