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一筆揮之)다. 시원시원한 필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번에 쭉 그어 선과 선 사이 여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화선지 위에 흘려 쓴 붓글씨는 빗자루로 마당을 쓴 듯 빗살무늬가 희끗희끗하다. 필자의 거침없는 힘이 느껴지는 그림글씨다.
지금껏 알던 서체는 추사나 석봉의 글이 전부였다. 옥산서원과 다산초당, 도산서원을 비롯해 내가 본 몇 안 되는 누각과 정자의 현판은 대다수가 추사와 석봉의 서체로 돼있었다.
굵고 가늘기가 심한 필획과 비틀어진 듯 각이 진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추사체와 해서, 행서, 초서 등 자기만의 독특한 글씨체를 만든 석봉, 이 둘이 내가 아는 전부다.
추사나 석봉의 글자 획에 빈틈이 없던 것에 비해 붓에 먹이 부족한 듯 필획이 희끗하게 비어있는 비백서는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비백서(飛白書)는 획을 나는 듯이 그어 그림처럼 쓴 서체의 하나이다. 역동적인 선의 흐름과 종이 바닥이 희끗희끗 드러나 보이는 갈필로 속도감과 생명력이 느껴진다. 필획에 실낱을 풀어놓은 것 같은 흰 부분이 드러나고 필세가 나부끼는 듯하다. 자획이 끊일 듯 이어지는 속도감 있는 서체로 흰 여백이 생긴 부분을 비백이라 한다.
모든 게 당돌하리만치 완벽해 틈이 없는 사람에겐 선뜻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조금 부족한 듯 들어갈 틈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미가 느껴진다.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중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친한 사이라 해 모든 것을 공유하려하거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은 절제미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비백일 것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가지와 잎이 너무 무성해 속잎이 누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서도 율마는 자신이 내뿜는 향기로 인해 고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채소를 가꿀 때도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남겨진 것이 더 싱싱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과실나무도 마찬가지다. 나무에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리면 영양부족으로 씨알이 작고 볼품이 없다. 크고 맛있는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솎아주기가 꼭 필요하다. 이처럼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할 때가 많다.
그렉 맥커운의 `에센셜리즘`에서는 무의미한 다수가 아닌 본질에 집중하라고 한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모든 것을 잘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거절이 필요한 이유이다.
무조건 맡은 일을 다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삶 속 수많은 일 중에서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 적지만 알차게 마무리 하는 것도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백은 할 수 없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이 모자라게 모든 걸 움켜쥐고 애면글면했다. 자식으로 며느리로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에 살림살이까지 동동거렸다. 원래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 가고 싶지 않거나 하기 싫은 일도 억지 춘향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잘 해내려 욕심이 앞섰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한 것 없이 차츰 지쳐갔다. 힘에 부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여러 병증이 나타났다. 간이며 신장에 적신호가 켜지고 결국엔 입원까지 하게 됐다.
여백이 외적 비움의 미(美)라고 한다면 비백은 내적으로 정돈된 간결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집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정리하기 전에 오랫동안 안 쓰던 물건들을 비우는 것이 먼저다. 꼭 필요한 것과 소중한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의 변신은 내가 버리기 달인이 된 계기가 됐다.
삼십 년이 넘도록 몇 번 쓴 적 없이 장식만 돼있던 그릇들이며 옷가지들을 들어내고 장롱 속에 묵혀져 있던 잡살뱅이들을 비워냈다. 꺼내보기 힘들었던 가족의 앨범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단절됐던 기억들이 다시 잇대어졌다.
겨울에 산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푸르게 살찐 여름 산은 울울창창해 제 몸을 감추고 짙푸른 숲과 나무들에 가려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짙은 그늘 속에 계곡을 숨기고 가지의 길을 숨기고 나뭇잎의 생각을 숨긴다. 그러나 겨울 산은 숨은 뜻이 없다. 산줄기는 간결하고 진솔하게 가슴뼈를 드러낸다. 가르마 같은 오솔길이며 밑동이 잘린 그루터기, 바위틈에서 봄을 채비하는 바람꽃의 숨결까지 보여준다. 겨울 산은 머잖아 오게 될 봄을 준비하며 잠시 쉼표를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강은 물이 온 몸으로 수 만겁 동안 만들어놓은 길이다. 높은 산에서부터 한 방울의 물방울이 모여 흐르는 강물은 작은 폭포와 용소를 만들고 평평한 너럭바위를 휘감아 대지에 한 획의 서체를 만든다. 풍경도 잠든 산사 옆, 갠소름한 강의 속살은 스며든 햇살에 빈 듯 채워진 듯 소중한 서체 하나를 유려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윤슬을 뿜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