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야말로 선진국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스튜던트`라는 멕시코 영화가 있다. 돈키호테를 좋아하며 연극 활동을 꿈꾸는 노년의 주인공 차노. 그는 퇴직 후에 대학교에 입학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다. 젊은이들과 친구로 어울리면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보게 되고 서로 배우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차노는 인생에서 사랑의 가치와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된다.
노년은 외롭고 침체 되기 쉬운 시기이다. 이들에게 배움의 열정을 갖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가꿔줘야 하겠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 하더라도 노인들의 생활이 참담하다면 후진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생교육은 국가 정책에서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나가야 할 부분이다.
AI가 일상에 등장하고 우주여행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거라 한다. 이런 시대에도 지난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한글과 산수조차 배우지 못해 평생을 불편하게 산 분들이지만 다행히 이들을 위해 마련된 `경주행복학교`가 있어 배움의 열정으로 행복한 학생들이 돼 있으니 이 얼마나 감복(感服)할 일인가.
경·주·행·복·학·교
한글문해교육 과정과 문해초중등 과정을 공부하고자 하는 노년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 모였다. 이들이 해마다 연말에 `패랭이꽃의 꿈`이라는 교지를 출간하는데 올해 제15호가 출간됐다. 이 책 속에는 학생들이 문해 교육을 받고서 써낸 시와 산문들이 주로 실려 있다. "남편이 군대 갔을 때 편지가 왔는데 읽기는 해도 답을 못해 내 마음이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라는 한 학생의 가슴 아픈 고백이 담긴 글을 본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와 같다.) 문맹자로서 겪어온 딱함을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으랴.
하지만 내가 이 책을 보며 새삼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단지 늦은 나이에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순수함은 유식하고 유능한 사람보다 어쩌면 어려운 형편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온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담긴 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준다. 인생의 이치와 진실은 어려움 속에서 채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짧은 시에 마음을 빼앗긴다.
더하기는 잘한다/빼기는 잘 안 된다/너무 알뜰하게 살아/그런가 보다 - 시 `더하기 빼기`(전문), 초급반 정현숙 작품.
화려한 수사가 넘치는 시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감동을 우리는 뜻밖에도 소박한 글(인용 시)에서도 느끼게 되니 새삼 놀랍다. 시가 위대한 문화자산인 것은 소박함을 오히려 빛나게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시를 쓰는 동안만 시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삶을 느끼는 동안만 진정 사는 것이다. 사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행복학교는 문해학교로서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이고 경북도에서 최대 규모이다. 초중등 과정(총6단계)에 150여명의 학생이 매주 3일 출석하며 교사 10명이 최소 강사비로 봉사를 수행하고 있다. 개교 26년 동안에 2600여명이 이수했으며 정규 초등과정은 34명이 졸업했다. 행복학교의 학생들은 매년 각종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리고 있고 교사들도 공로 표창을 받고 있다.
2021년에 교육부로부터 `평생학습 도시`로 재지정을 받은 바 있는 경주시와 교육지원청이 이 학교를 지원해주고 있다. 또한 건물의 공간을 저렴하게 내어준 한성근(삼부치과 원장)씨와 임진출(전 국회의원, K-포럼 회장)씨 등 지역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어려운 가운데 명맥을 이어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매일 출석·출근하는 인원에 비해 공간이 극히 협소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거니와 운영비가 사실상 없는 상태이고 강사비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교직원이 고군분투하는 실정이다.
노인이 행복한 학교, 경주행복학교가 우리 경주시의 `행복 씨앗`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