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 경제로 유탄이 날아들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환율 역시 연일 치솟으면서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2년 전 `셧다운` 사태로 경제를 멈추게 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못지 않은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외신 등에 따르면 아시아 거래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 장중 한때 139달러까지 치솟았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130.50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08년 이후 14년만에 처음이다.
환율도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24일 1200원을 돌파한 달러·원 환율은 전날 1227.10원까지 올라 2020년 6월2일(1227.8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경기 불확실성은 전반적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다. 주요 원자재 가격의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에너지·중간재 가격이 불안해진 데다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 반영 등이 커진 것이 원인이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러시아의 최초 침공 때만 해도 일주일 이내로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지만 벌써 3주째 접어들고 있고 러시아 역시 쉽게 발을 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쉽게 굴복하지 않고 이것이 대 러시아 경제제재로 이어지면서 유가 급등과 공급망 악재로까지 이어졌다"면서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2020년 코로나19 때 못지않은 경제 위기"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우리 경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7% 오르며 5개월 연속 3%대 상승을 이어갔는데 20%대로 급등한 석유류 가격이 전체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우크라 사태가 2월말에 발발해 아직 영향이 완벽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물가는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또 지난 1월 전(全)산업생산지수도 전월 대비 1.9% 하락했는데, 공급망 차질 등의 영향이 본격화된다면 타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올해 경제 계획이 초반부터 흔들리게 됐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위축됐고 백신 접종 등으로 비교적 영향이 약화되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기대했지만 전망이 엇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3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확산에도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외 여건에 대한 우려로 경기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우려했다.
최근에는 2017년 이후 5년 만에 물가관계장관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 세계적으로 예전의 인플레이션 악순환(inflationary spiral)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매우 중차대한 시기"라며 "특히 높은 물가상승률은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민생과 경기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2022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3.1%, 물가상승률은 2.4%로 예상했는데 현재로서는 둘 모두 전망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은행의 경우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기존 3.0%를 유지했지만 물가상승률은 기존 2%에서 3.1%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둘 다 목표 달성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다 물가가 폭등할 수 있고 물가를 잡으려다 반대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