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이 지나간 갯벌. 숨구멍이 발랑거린다. 엽낭게는 모래를 둥글려 탑을 쌓느라 바지런하다. 맨몸으로 재바르게 돌아다니던 겁보 소라게는 껍데기를 찾아 울러 쓰고 은둔한다. 사람들은 호미며 양동이, 더러는 삽까지 들고 갯벌을 헤집으며 술래가 된다.  휴가에 맞춰 몽산포를 찾았다. 물때를 맞추면 갯벌 체험과 해루질도 할 수 있다는 말에 호기롭게 떠나온 길이었다. 낚시 바구니에 모종삽과 맛소금, 깜장 고무신 갈아 신으니 밭일 나가는 농부 같다. 작은 구멍에 맛소금을 탈탈 먹이면 발깍발깍 물을 토해내다가 쏙 고개를 빼 올리는 맛조개.    해루질은 물이 빠진 얕은 바다나 갯벌에서 어패류 등을 채취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밤에 불을 밝혀 불빛에 모여드는 물고기를 잡는 전통어로 방식이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 웅덩이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며 낙지, 게, 조개 등을 잡을 수 있다. 썰물이 진 갯벌 샛길 따라 갯고동이 살고 방게, 모시조개, 가리맛조개가 들숨 날숨 생명을 이어간다. 그 속에 허리춤에 망태기를 걸어 맨 할머니가 재바른 손놀림으로 갯벌을 누비며 그것들을 잡아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한 데다 귀먹은 항아리처럼 동그맣게 앉아 어떤 소리에도 태연자약한 할머니가 만만치 않아 멀뚱히 앉아있었다. 좀체 말곁을 주지 않던 할머니가 어디서 왔느냐며 먼저 말을 붙여 왔다. 차가울 것만 같던 할머니는 보기와는 다르게 따뜻한 분이었다. 푸념하듯 뱉어내는 속사정은 청양고추 썰어 넣고 끓여 준 낙지라면보다 쓰리고 매웠다.  스물아홉 고개를 못 넘긴 당신의 남편은 딸 하나와 유복자 아들을 남겨두고 어족인 양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갓 스물을 넘긴 여인은 남편 잡아먹은 죄인이 돼 따가운 눈총이며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개펄은 감옥이었고 고단한 노역장이었다. 천만겁의 밀물, 썰물은 절망과 아픔을 실어다 가슴에 퇴적층을 만들었다. 먼 데서 잠식해오는 소금물에 속을 염장하고 갯바람에 꾸덕꾸덕하게 절어진 할머니의 주름은 억척의 세월이 새겨놓은 팔만대장경 같은 밥의 문신인 것을.  속초로 여행한 적이 있다. 지인이 꼭 들러야 한다며 추천해 준 맛집의 주인장은 바다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잠수부였다. 공기호스에 생명을 담보하고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차디찬 물속에서 가족의 끼니를 건져 올렸다. 거친 바다에 생업을 걸고 물때 거른 적 없이 밥벌이한 덕분이었을까. 짠물에서 뼈마디가 굵어진 촌로의 물질은 목숨을 이어가는 한 공기의 밥이다. 고층 건물 꼭대기에 밧줄을 고정하고 그 외줄에 목숨을 맡긴 채 햇살에 반짝이게 유리를 닦는 늙은 청소부. 한여름 불볕더위 속 마른 숨소리, 지상으로 낙하하는 찐득한 땀방울, 갈라져 터진 손마디는 녹록지 않은 목숨을 이어가는 밥일 것이다. 그의 허공을 밟는 공중곡예 같은 삶은 수직 도시의 밥을 위한 별곡이 아닐까.  썰물이 시작되는 자정에 맞춰 할머니는 또다시 해루질을 나섰다. 바라보는 것이 고통이었을 바다에서 당신은 한시도 허투루 살 수 없었다. 망태기가 풍족할 때 자식들의 살 오른 웃음소리는 그 고단한 발걸음을 물때에 맞추게 했다. 당신에게 갯벌의 숨구멍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태 여물지 못한 숫구멍이다. 단 하루도 어긴 적 없는 해루질은 아이들의 목숨이었고 당신의 소금밥이었다.  결혼 초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나는 졸지에 가장이 돼야 했다. 년마다 새로 계약하는 조건으로 퇴직 전에 다니던 직장에 나가게 되었다.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원의 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았지만 하소연할 틈도 없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은 아직 눈이 까만 아이들의 옷이었고 한 그릇의 밥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생존을 위한 밥벌이를 한다. 육지생물들은 한 끼의 밥을 위해 장마철 여름밤에 부나비 덤비듯 사냥을 한다. 몇몇 거미들은 풀숲에서 먹이 사냥을 직접 하기도 하지만 대게의 거미들은 백척간두에 도래방석 같은 그물을 치고 생명을 이어간다. 물총고기는 입안에 물을 품었다가 물 밖 식물 위를 지나가는 곤충을 쏘아 잡아먹는다. 물속에서 수면 위에 있는 먹이를 사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밥을 위한 발버둥이다.    저마다의 삶을 들여다보면 물때 맞춰 살아가는 몽산포 할머니의 해루질이나 거친 바다에서 가족의 끼니를 건져 올리는 잠수부의 물질, 높은 줄에 매달려 유리를 닦는 청소부의 삶 등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은 목숨을 이어가는 한 그릇의 밥을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새벽 여명과 함께 먼 데서부터 밀물이 갯벌을 적셔 들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물기 머금은 새날 노을에 환하다. 잔잔하던 하늘이 갑자기 짐승처럼 으르릉거리고 번개가 비바체몰토로 바다에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갯벌에 장대비를 퍼붓는다. 어스레한 여명에 갯것들은 밥을 찾아 바쁘게 숨구멍을 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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