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수평선에 점 같은 바위덩이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사람들의 풋풋한 냄새와 흙이 사라져 가는 길속에서 울릉군 만이 가지고 있는 울릉도에서 걷고 싶은 흙길을 경상투데이 독자들에게 추천 한다.때로는 자연속에서 어쩔 땐 사람속에서 자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울릉군민들의 그려놓은 자연속의 흙길을 격주로 10회에 걸쳐 경상투데이 독자들에게 소개해 드리고 있으며 이번주에는 8번째 길 태하 옛길을 안내한다. <편집자 주> 계절이 몸을 뒤집었다. 바람의 무게도 가벼워져 옷 속으로 자연스레 밀고 들어온다. 산은 하루아침에 또 다른 색을 받아들여 자연스레 가을 색을 산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다. 뜨겁던 여름을 뒤집고 다가온 가을은 한참 동안 산통을 겪었다. 바다는 심술부리듯 며칠 동안 섬을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고 오가던 여객선은 줄에 묶여 항구 파도에 흔들리고 하늘에선 무거운 바람이 내려왔다. 뜨겁게 울릉도를 탐하러 오던 사람들은 정해진 코스처럼 돌아가 버리고 이제 그 끝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섬은 한산하다. 오늘 그들과 함께 나지막이 도란거리며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진정한 울릉도의 길, 옛길이다 길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그 길을 지나가고 있어도 애써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그렇게 이곳 사람들에게도 멀어져 있었고, 잊혀 있던 좁은 길이다. 아주 오래전 걸었다. 무리 지어 걸어 아무 감흥 없이 그냥 발 도장 찍기 위해 다녀왔던 길을 새롭게 깊은숨 쉬며 걷는다. 없다, 흔적이 없다. 풀이 덮고 있다. 더는 소용이 없어 누구도 보듬지 않았다. 그저 기억 속 길이었고,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가끔 무리 지어 되새김질 하듯 존재했던 길이었다. 바닷가로 길이 만들어지고, 산허리를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 이제는 산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예전 이곳 우리 어른들은 어떤 길로 다녔을까? 지게 지고,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어찌 다녔을까? 웃자란 풀들이 말하듯 이 길은 `밟음`이 없었다. 산에서 흘러온 곱고 기름진 흙들이 길을 메우고 풀들은 다른 곳의 풀들보다 짙은 초록을 담고 웃자라 있다. 뜨거운 여름, 미친 듯이 자란 풀들은 세 뼘 남짓한 길 폭을 채우고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길이 시작되는 곳, 걷는 이는 아장아장 아기 걸음으로 발을 내디뎌 풀과 길의 깊이를 헤아려야 한다. 오늘 걷기는 학포마을에서 옛길따라 산을 넘어 태하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학포마을은 마을 뒤편에 학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학포(鶴圃)라 불린다. 태하마을처럼 황토가 있었지만, 양이 적어 작은 황토구미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일주도로를 지나다 보면 마을 입구만 겨우 보이고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조차 자칫 입구를 지나치기 일쑤다. 도로변 작은 입구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 십여 분 정도 내려가면 해안 마을이 보인다. 조용하고 아늑하다. 울릉도 개척 역사의 유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종임금이 파견한 이규원 검찰사가 배 3척에 100여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1882년 4월 30일 울릉도에 처음으로 도착한 마을이다. 이때 큰 돌에 새긴 임오명 각석문이 마을 한쪽을 지키고 있다. 시간이 허락하면 마을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치유라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오늘 걸음은 마을을 내려서기 전 산허리에 올라선다. 최근 울릉군에서 `생태탐방로`라는 이름으로 옛길 구간별로 정비하고 있다. 학포를 시작으로 북쪽으로 걸어간다.◆ 걸음의 시작은 작은 다락방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 마을이 보이는 내리막 오른편에 탐방로 안내판을 기준 삼아 길을 오르면 집이 한 채 있고 그 옆으로 밭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길 끝엔 파란색 커다란 물통이 있다. 시작이다. 바닥에 탐방로 방향을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야 한다. 천천히 풀을 헤치고 걸어 들어간다. 앞에 보이는 산이 마을과 마을을 구분 짓는 낮은 산이다. 뜨거운 여름 무성하게 자라 무릎까지 올라오는 풀을 발로 차며 걷다 보면 그제야 산길 흔적이 보인다. 아래 너른 부지갱이 나물 밭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부지런히 베어 놓은 부지갱이 대궁이를 묶어 밭 가로 옮기고 있다.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하고 멀리서 고개 숙이니 고함을 친다. 그 고함 속에는 나를 이방인으로 인식하고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의 모양과 시간의 흐름이 담겨 있었다. 수없는 고개 숙임으로 답하고 모퉁이 돌아 산 안으로 들어갔다. 길은 딱 혼자 보폭이다. 길은 온순하다. 무릎이 개운할 정도로 올라 걷고 공중부양하듯 평 길은 편안하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대부분 갈지자다. 길이 꺾일 때마다 눈앞을 채우는 모습들은 순간순간 가슴 벅차다. 내려다보는 마을은 등 뒤를 따르기도 하고 눈앞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모퉁이 돌아 마을을 내려볼 때마다 마을의 크기는 달라진다. 집들만 보이다가 다시 돌아 올라서면 해변이 보이고 한 번 더 돌아보면 마을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결국에는 도로변 마을과 전체 길 흐름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한적하다. 여름이면 무리 지어 조용히 찾아드는 곳이다. 섬 안의 작은 다락방 같은 곳이다.ㅤ 차곡차곡 걸음을 옮긴다. 나무로 채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에는 부지갱이 나물들이 길 가운데를 채우고 있어 쉽게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다. 온갖 식물들이 채워져 있다. 평소 알던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어도 한순간 입안에서 맴돌다 만다.◆ 산허리 정상에서 울릉도 모든 길의 흐름이 보인다 천천히 쉬다 걷다 하며 40여 분 걸어 오르면 소나무 군락 사이로 산 정상이 보인다. 바람이 골을 타고 올라 시원하다. 뒤돌아보면 멀리 지나온 길이 보이고 마을과 일주도로가 보인다. 모두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일주도로도 구불구불, 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휘어져 있고 걸어 올라온 길로 갈지자다. 울릉도 길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딜 가나 이런 모양의 길들 연속이다. 내려서 걷는다. 산 하나 넘었다고 길이 다르다. 내리막이라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은 여전히 푹신하다. 지난 태풍에 꺾여 쓰러진 소나무를 마가목 나무가 받치고 있다. 습기 많은 날 내리막길은 미끄럽다. 풀이 바닥을 가리고 있어 천천히 걸어 내려와야 한다. 태하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짧다. 조금 더 걸어 내려오면 마을이 보인다. 태하등대와 성하신당, 모노레일로 유명한 태하마을이다. 숨 고르며 천천히 사찰 쪽으로 내려오면 끝이다. 약 2km, 한 시간 걸음으로 울릉도 역사가 숨 쉬는 두 마을을 지나왔다. 천천히 태하마을 한 바퀴 돌아보며 짧은 걷기의 여운을 달래보는 즐거움도 만들어 본다. 천천히 한발 한발 걸어도 한 시간이면 된다. 큰 맘 먹고 작정하고 걷기에는 짧은 길이다. 이번 길은 울릉도 옛길의 표본이다. 울릉도는 화산섬 특유의 지형으로 산줄기 아니면 계곡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계곡 끝에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웃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했다. 옛길로 접어든 첫걸음은 가벼웠다. 십수 년 전 처음 걸어 본 아련한 기억을 믿지 못해 가방 가득 간식을 채우고 걸었다. 그냥 걸었다. 짧은 거리라 더 미안하고 허탈했다. 혼자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30분이면 충분한 길이다. 맨몸으로 운동하듯 걸어도 좋을 길이다. 하지만 천천히 즐기며 걷는 걸음도 좋다. 다음 걸음에는 길동무를 데려와 걷고 싶은 길이다. 길은 험하지 않다. 아직 많은 흔적이 남아 있어 초행이라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이제 긴 걸음을 준비한다. 여벌 옷을 준비하고 물통 가득 물도 챙겨야 할 길이다. 길동무를 옆에 두고 더 깊은 산길을 따라 또다시 옛사람들의 발자국을 찾으러 나선다. 임정은 기자 0547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