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수평선에 점 같은 바위덩이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사람들의 풋풋한 냄새와 흙이 사라져 가는 길속에서 울릉군 만이 가지고 있는 울릉도에서 걷고 싶은 흙길을 경상투데이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때로는 자연속에서 어떨 땐 사람속에서 자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울릉군민들이 그려 놓은 자연 속의 흙길을 격주로 10회에 걸쳐 경상투데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으며 이번주에는 6번째 길을 안내한다.   <편집자 주>길이 춤을 춘다. 발걸음이 리듬을 탄다. 유체와 무형의 경계를 걷는 사람의 숨결도 따라 요동친다. 바위 위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맨눈으로는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섬, 울릉도는 수많은 시간 동안 형태도 없는 파도에 할퀴고 적셔지며 줄어들고 좁아졌다. 그 줄어듦을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세월의 흐름을 무시하며 삶을 이어가듯 자연스럽게 잊고 산다. 광복절, 태극기가 온 울릉도를 뒤덮고 태극의 흐름이 독도까지 뻗친 날. 도동 여객선 터미널에서 바다로 이어진 계단으로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며 한 줄로 바위 위를 걸어 오르고 내린다. "대박이다, 대박" 방금 바다로 접어든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소리 지른다. 그들이 바라본 바다는 옥색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짙게 그들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바윗길을 되돌아오는 복숭앗빛 얼굴을 한 일가족의 딸은 울 듯한 표정으로 "내리막도 싫다"며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그날, 하늘 뚫린 듯 맑은 오후의 햇살은 그늘마저도 용암처럼 뜨거웠다. 사람들은 걷는다. 파도치듯 무리 지어 행군하듯 조심스레 이 길을 걷는다. 이곳을 보고, 걷지 않고는 울릉도를 디뎠다 할 수 없다 한다. 그들은 이 길을 걷고 감탄한다. 오늘 걷는 이 길은 살아있는 울릉도의 뿌리다. 거친 수세미 같은 바위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숨소리가 파도에 섞여 오고 간다. 이곳 사람들이 붉고 뜨거운 용암이 굳어진 이 터 위에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해안 산책로, 행남등대를 거쳐 저동으로 가는 길이다. 도동과 저동을 잇는 해안길이다.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좋다. 도동항 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해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약 2.6km 거리의 해안 산책로를 걸어본다. 울릉도 독도가 국내 최초 국가 지질공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걷다 보면 이곳이 울릉도의 지질 구조가 가장 잘 보존된 지질학 교과서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위는 유순하지 않고 거칠다. 다리를 놓고, 바다로 흘러내린 용암 바위를 깎아 길을 내고, 봉긋하게 바다로 흐른 바위는 구멍을 내 고개를 숙여야만 지날 수 있는 터널을 만들어 두었다.길에서 한 발짝만 아래로 발을 내려놓으면 바다다. 옥색이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옥색 바다다.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고 서둘러 내리막을 내려간다. 길 아래 바닷속에는 작은 고기가 이리저리 다니고 해초가 파도따라 헤엄친다. 행남등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담하고 편안하다. 산책길이다. 머리 위로 뻗어나온 용암 바위 속에 작은 돌들이 머리 위로 아득하게 떨어질 듯 위태하다. 그 돌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같은 모양의 돌은 없다. 도동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행남마을 입구까지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는 화산과 관련된 지질학적 지식창고다. 화산 활동으로 생긴 울릉도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진 다양한 암석과 지질구조가 이어진다. 이 길은 국토부가 선정한 `해안 누리길` 52곳 중 한 곳이다.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곰 인형을 안고 달리던 곳이기도 하다.도동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해 30여 분 걷다 보면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은 끝이 나고 산으로 접어든다. 행남마을이다. 여기서 약 20여 분 걸으면 행남등대(도동 항로표지관리소)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를 위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대나무 숲이 나온다. 바닥은 길 위에서 발길따라 흐르고 바람에 밀려온 마른 솔잎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대나무는 길을 덮고 있다. 길 양쪽 대나무는 길 쪽으로 누워 햇빛 한 점 들어올 수 없게 빽빽하게 그늘을 만들고 있다. 대나무 숲은 알 수 없는, 대나무 속처럼 텅 빈 향기가 난다.  대나무 터널을 벗어나면 소나무가 반긴다. 길옆 너른 목초지에는 염소가 소리 내며 풀을 뜯고 소나무 아래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털머위가 초록 우산처럼 나무 밑을 점령하고 있다. 가을이면 털머위는 노란색 손잡이 꽃을 들고 서 있는 우산처럼 넓게 자리 잡고 지나는 이의 시선과 후각을 뺏을 것이다. 세월의 혈관처럼 도드라지게 뻗어나온 소나무 뿌리를 밟으며 천천히 위로 오른다. 바로 평지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과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이 보인다. 행남등대를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가야 하고 왼쪽으로 가면 저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행남등대 전망대를 봐야 한다. 왼쪽 길을 등대를 거쳐 나와서 지날 길이다. 오른쪽으로 접어든 길에는 파도 소리와 박자를 맞춘 매미들이 서로 대화하기 어려울 만큼 울부짖는다.  등대 입구, 너른 계곡 풀밭에는 울타리도 없고 목줄도 매지 않은 흰색, 누런색, 까만색 염소들이 초록 위에서 위태롭지만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바로 앞, 바다 위 산속에는 어울리지 않을듯한 현대식 건물이 서 있다. 행남등대다. 정식 명칭은 도동 항로표지관리소다. 등대건물이 보이고 직원숙소가 보인다.마당에는 너른 휴식장소가 있다. 등대건물 오른쪽 모퉁이를 지나면 돌고래 조형물이 있고 내려서면 작은 전망대가 나온다. 그곳에는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의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고 광활함에 압도당한 오감은 입 밖으로 탄성을 짓게 한다.  저동마을이다. 곧 이어질 저동 해안 길과 촛대바위, 죽도, 북저바위, 멀리 관음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내려다보인다. 어서 달려가고 싶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저동 해안 길을 재촉한다. 등대를 벗어나 되돌아 나온다. 조금 전 갈림길에서 아래로 향하면 도동쪽이고 앞으로 바로 가면 저동 해안 길 입구가 나온다. 표지판은 잘 정리되어 있어 산속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정자 쉼터가 보이면 그곳이 저동으로 이어지는 길 입구다. 이곳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된 사람들과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다. 얼굴빛 하얗게 지친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은 저동에서 이곳으로 올라온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곧 이어질 길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이다.철계단을 몇 계단 내려서면 왜 그 사람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는지 안다. 57m 높이 수직 나선형 계단이 보인다. 소라처럼 생겨 소라 계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입구에 노약자나 임산부 등은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가 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되돌아가기도 한다. 아래가 훤히 보이는 난간 계단을 지나 빙빙 돌아내려 가는 수직 계단은 담력테스트라 하기에 충분히 무섭다. 돌아가기도 아쉽고 무서움을 참고 내려가기에 힘들고, 선택의 순간이다. 가까스로 내려선 계단은 적당히 아찔하다. 어떤 이는 무릎을 반쯤 굽히고 중앙기둥을 안은 채 감각으로만 기어 내려간다. 그 옆을 성큼성큼 둔탁한 걸음으로 계단 철 소리를 내며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많이 미웠을 것이다. 일행은 그 모습을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보조를 맞춰 내려간다. 내려서면 파도가 반긴다. 지독한 바다 냄새가 파도따라 밀려온다. 여기서 저동 촛대바위까지는 20분여… 바다 위를 가로 지르는 형형색색의 무지개 철 다리 위를 걸으면 온몸은 바다 냄새로 휘감긴다. 철 다리를 지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천천히 발끝 보며, 바닥 보며 걸어야 한다. 도동의 파도는 얇다. 저동의 파도는 두껍다. 소리도 다르다. 길 아래 먼발치에서 흔들리는 도동 해안 길 파도는 여성미가 느껴지고 바로 옆까지 올라오는 저동 해안 길 파도는 남자다. 총 2.6km,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다. 군데군데 흙길은 짧다. 인공적인 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철 다리와 시멘트 길 역시 그 처음은 흙이고 흙을 위해 존재한다. 이 길을 걷지 않고 울릉도를 다녀왔다 할 수 없다.이 길에는 울릉도의 원초적인 속살이 숨어 있는 길이다. 그 뿌리 위를 걷고 그 속을 담아내는 길이다.파도가 길 위를 넘나드는 날은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일정 중 가볍게 걸어 보는 길이다. 연인으로, 가족으로, 홀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바늘 끝처럼 뾰족해진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도시생활의 찌듦을 이곳 바다 몽돌처럼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가는 것도 이곳에서 바로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자연치유다. 한 시간 반 동안의 걸음, 적당한 육체적 피곤은 가슴을 가득 채운 새로운 기쁨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걸음이다. 진정한 여행과 휴식의 즐거움을 주는 `걷기`다. 누군가 옆에서 설명하고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걸음`이다. 눈으로 보는 울릉도보다 몸으로 담아내는 울릉도는 오랜 시간 기쁨으로 남을 시간일 것이다. 그 기쁨의 시간을 위해 이제 조금 더 깊은, 섬의 고단한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길을 걸어보려 한다. 섬 안으로 초대한다. 그 안에 아주 오래된 길이 있다. 숨을 고르고 함께 걷자 청한다.   임정은 기자 0547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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