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울릉도는 3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바윗덩이처럼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로 비어있던 작은 섬은 더위와 바다 건너온 뜨거운 숨결이 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시원함을 찾는다. 한 뼘 그늘이라도 헤집고 들어가 햇살을 피한다. 구경도 싫다 한다. 바람 부는 그늘 밑이 피서라 한다.그늘로 이어지는 산속 길이 있다. 그 안에 천연의 바람이 있고 신비로운 수목들의 들숨과 날숨이 있다.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이어질 수 많은 시간 동안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 오래전 차가 다니던 길이라면 입구를 막고 발로만 다니도록 하고 싶은 길이 있다. 꼭꼭 숨겨놓고 "걷기"만 허락해 주고 싶은 길이 있다. 그곳은 세월의 발길이 가장 깊게 스친 곳, 태하령 길이다. 가파른 산허리에 길은 이리저리 휘감겨 있다. 길은 딱 차폭만큼 나 있다. 이제 두 발로만 다닐 수 있다. 멀고 힘든 길이다. 흙길과 시멘트 길이 반반이다. 세 군데의 출발점이 있다. 태하, 구암, 남양에서 각각 출발해 이곳을 지나 서로 엇갈려 내려 걸을 수 있다. 이번 걷기는 남양에서 출발해 나발등 마을 입구까지 차량으로 이동해 걷기 시작했다. 태하령(496m) 길은 천천히 걸어 오르고 내려야 한다. 그냥 발끝만 보고 걷는다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 길이다. 태하령은 성인봉 서쪽 봉우리로 울릉도의 모든 나무와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가장 원시적인 자연 수목원이다. 사계절 모두 다른 자연의 피조물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솔송나무, 섬잣나무, 너도밤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천연기념물 50호로 지정되어 태하령 길을 지키고 있다. 그 나무 아래로 수많은 꽃과 고유의 이름을 간직한 식생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시작부터 시멘트 길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하면 차량으로 태하령길 입구인 남서리 나발등까지 이동하기를 권한다. 남양마을에서 나발등까지 약 2.6km의 시멘트 길이다. 나발등 입구에 도착하면 집이 한 채 있고 너른 마당이 있다. 그 집 왼쪽 옆으로 위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 있고 둘레길 입구 표지판과 길 안내판이 있다. 천천히 걷는다. 한여름 오전 햇살이라도 목덜미를 따끔하게 만든다. 곧바로 대나무가 즐비한 산길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다. 천천히 한 발짝 씩 오른다. 이 길에는 뾰족한 침엽수부터 넓은 활엽수 잎까지 골고루 발바닥을 채워준다. 올라가는 내내 여름 햇살은 숲을 뚫지 못한다. 가끔 나뭇잎이 바람에 못 이겨 햇살을 내려놓기는 한다. 바람에 넘어진 지 수년이 된듯한 나무가 길을 막고 있고 소나무 잎인 듯 자세히 보면 잣나무 잎이 가득 바닥을 덮고 있다. 이쯤 올라서면 포근하고 아늑한 뜨거움이 다가온다. 숨이 찰 때쯤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모퉁이 돌아서면 짧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길은 활기차다. 잠시도 지루하지 않다. 아무 곳이나 털썩 주저앉아 바람에 땀을 맡기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초록별 나뭇잎이 햇살에 흐느적거린다. 나뭇잎이 별 모양이다. 그 투명한 초록색 별 모양 잎이 걷는 내내 머리 위 양산처럼 햇살을 받아줘 자연스레 걷게 한다. 가을이면 초록이 붉은 기운으로 변해 온 산천을 물들인다. 다시 와서 걸어보라 유혹한다. 40여 분, 천천히 걷다 보면 마지막 오르막 나무 계단이 나온다. 올라서면 시멘트 길이 보이고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데크와 의자가 있다. 커다란 솔송나무와 잣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어 땀 식히기 좋다. 침엽수 아래 부는 바람은 따가운 바람이다. 싸늘한 바람이 몸을 감는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나무들이 온 산속을 지키고 있다. 산 아래 깊고 뜨거운 기운을 나무들은 뿌리부터 뽑아 올려 날카롭고 시원하게 세상에 뿌려댄다. 앉은 자리에서 보면 아래로 내려가는 시멘트 길은 구암으로 향하고 얕은 오르막은 태하령을 넘어 태하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신발을 단단히 조여 매고 출발해야 한다. 오르막이 잠깐 이어지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원형으로 만들어진 길을 지나면 태하령 정상이다. 정상 바로 밑에 너와 지붕 모양으로 만든 작은 정자가 있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건너편 산마루가 보인다. 멀리 태하 향목이 보인다. 현포령 풍력발전기 날개도 보인다. 추천하기 힘든 시멘트 길 내리막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천천히 걸어야 한다. 경사도가 심해 아래로 걷는 내내 발가락이 아프다. 신발을 단단히 조여 매고 천천히 걸어야 하는 이유다. 무릎을 펴서 걷기 힘들만큼의 경사도를 지나면서 예전 이곳 사람들이 어찌 이 길을 지났을지 짐작된다. 차들은 일방통행으로 내리막이나 오르막에 멈추거나 다시 출발하기 무서웠을 것이다. 이제 터널이 뚫리고 다리가 놓여 이 길로는 차량통행이 제한되어 걷기만 가능하다. 몇 구비 돌아내려 오면 커다란 바위로 길을 막아 놓은 곳에 작은 쉼터가 있다. 주변에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샘터가 있다. 가뭄이 심해 물이 나오지 않아 흔적만 남아있다. 천천히 다시 시작되는 내리막이 완만하다. 길옆으로 계곡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 사는 흔적도 보이고 경작지도 보인다. 여름 햇볕이 따갑다. 이제 산길을 벗어났다. 작은 농로처럼 길이 이어진다.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지만, 급경사 내리막을 걸어 내려온 탓에 발이 아프다. 아무 데나 앉아 쉬어도 좋다. 수시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시원한 바람 쐬게 해준다. 태하령 정상을 지나 내려오는 동안 내내 시멘트 길이지만 그리 힘들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길옆으로는 높게 자란 식물들과 길 가장자리에 내려앉은 나뭇잎들이 인공미를 덮어준다. 그리 피곤한 길이 아니다. 길을 벗어날수록 길은 완만하고 저절로 걸어진다. 민가가 보인다. 집은 강아지가 지키고 마당을 가득채운 나물은 여름 햇살에 부서질 듯 말라가고 있다. 입구 한쪽에는 포도가 대롱대롱 매달려 검은색으로 변색 중이다. 길옆 계곡은 깊다. 계곡은 물보다 풀이 더 많다. 물은 말라 겨우 흐른다. 풀이 차지한 계곡 바닥이 이곳 가뭄을 보여준다. 땀이 더는 흐르지 않을 정도의 걸음으로 털레털레 길게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 기계음이 들린다. 다 왔다. 왼편으로 공장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마을이 보인다. 정자가 있다. 마지막 쉼터다. 수도꼭지 열어 차가운 물로 땀을 지우고 앉아 쉬었다 다시 걷는다. 멀리 태하 공설 운동장이 보이고 서달마을 올라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길가 밭에는 미역취, 명이, 부지갱이 나물이 억지로 돌아가는 스프링클러 물에 한낮 갈증을 달래고 있다. 운동장 앞에서 태하마을로 걸어 내려가면 태하령 길의 긴 걷기는 끝이 난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태하등대, 향목 옛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남양에서 시작되는 태하령 길은 태하마을까지 약 5km 거리다.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 정도의 걷기다. 대부분 두 시간 내에 끝난다. 태하에서 올라 남양으로 내려가는 길보다 남양에서 시작해 태하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권한다. 시멘트 길 긴 오르막은 힘이 든다. 오르막을 오르면 주변을 보기보다는 걷기 바쁘다. 태하령은 그냥 걷는 길이 아니다. 주변을 보고, 나무를 보고, 식물들을 보며 걸어봐야 할 곳이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식생이 존재하는 곳이다. 단순히 발과 근육을 움직여 오로지 걷기 위해 걷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걸으면서 배우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든 지식이든 걸으면서 배울 수 있다면 좋은 움직임이다. 울릉도 여행은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태하령 길은 큰 맘 먹고 걸어야 하는 길이다. 접근하기도 힘들고 길도 온전한 산길, 흙길이 아니다. 이 길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 코스로 자리 잡지 못하고 알음알음 걷기를 위한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대로 울릉도 사람들의 흔적과 세월이 담긴 진득한 길을 걷고 싶다면 태하령 옛길이다.  한나절이 훌쩍 달아나는 일정일지라도 이곳을 돌아본다면 평생 기억될 것이다. 더위에 지친 숨을 목 뒤로 넘기며 걷는 길, 들숨과 날숨으로 울릉도 길의 호흡을 가늠해보는 걷기는 계속 이어진다. 임정은 기자 0547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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