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시작됐다.
전쟁 직후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 당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고 심지어 피난을 포기하고 공산주의로의 통일을 받아들이는 시민과 고위층마저 있을 정도로 전세는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을 수 있게 만든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바로 미국을 비롯한 22개국이 UN을 통해 군사와 자원을 지원하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같은 해 7월 5일, 북한군과 UN군의 첫 교전이 발생했으며 이후 약 두 달간 국군과 UN군은 사력을 다해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이미 낙동강 남쪽 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가 점령 당할 정도로 위태로운 전세였지만 북한의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UN군은 우리가 다들 잘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그 기세로 서울을 수복하는 데 성공, 압록강의 물을 수통에 담을 정도로 통일을 목전에 뒀지만 안타깝게도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 38선에서 교착 상태를 이어가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며 한반도는 두 체제를 쭉 유지하고 있다.
한때는 적화통일 직전까지 몰렸지만 UN 참전국들의 도움으로 회생한 대한민국은 정전 이후 70년, 최빈국이었던 지위에서 지금은 반대로 여러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성장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가히 눈부신 발전이자 이 자체가 기적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러한 기적의 토대를 생각하면 가끔 숙연해지는 순간이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에서 당시 참전한 군인들이 모두 무사히 귀환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머나먼 타지이자 전쟁 전에는 한 번도 밟아 본 적 없었을 땅에서 전사한 UN군은 4만여명으로 집계된다. 설령 살아서 귀환한 자들이라 해도 크고 작은 부상 또는 정신적인 트라우마 등으로 오랜 세월 고통에 시달린 자들은 숫자로 나타낼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정전 협정이 체결된 날로부터 어언 71년. 2024년 현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전쟁과는 먼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엄연히 전쟁은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에 불과하다.
지금도 여러 가지의 형태로 북한의 대남 도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의 관심은 연예·사회·정치 분야의 이슈에 몰리기 일쑤다. 기존과는 다른 형태였던 오물 풍선 살포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시기가 있었지만 그마저 바람 빠진 풍선 마냥 대중들의 관심은 빠르게 꺼져 들었고 대남도발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미 전쟁은 먼 옛날의 일이며 현대에 다시 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치열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인식이 옳은가 그른가는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개인마다 생각하는 바도 다를 것이기에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다. 휴전 중이지만 전쟁이 끝난 것 같은 평화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과거 수많은 국군 장병들과 타향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2024년 7월 27일, 정전 협정 71주년을 기념하며 언젠가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고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