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 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하략)  저항 시인 이육사가 1939년에 `문장지`에 발표한 작품 `청포도`이다. 여기서 `내 고장`은 아마도 이육사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안동 원촌마을일 것이다. 그곳에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옛 원촌마을은 대부분 물에 잠겨서 사라지고 이육사가 살던 생가도 없다. 대신 문학관 산 뒤에 그의 묘소가 있다.  안동은 예로부터 `두 물이 아름다운 곳`이라 불렸다. 두 물은 낙동강과 반변천이다. 청량산을 휘감고 내려 오던 낙동강 물길은 도산서원을 거쳐 한 굽이 지나면 예끼마을과 만나며 일월산에서 발원한 반변천은 낙동강 지류로 하류에는 임하호가 자리 잡고 있다. 두 물이 아름다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선비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나라의 환란 때마다 의병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곳도 경북도 북부지역이었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세손으로 어린 시절 조부에게 소학 등 한학을 배웠으며 16살이던 지난 1920년 조부가 돌아가신 뒤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 모두가 대구로 이주 정착해 33살인 1937년까지 17년을 대구에서 살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베이징으로 건너가 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해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이육사는 아나키스트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활동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투사의 길을 선택했다. 17차례의 옥고를 치르면서 단 한번도 꺾이지 않은 불굴의 삶을 살았던 초인 이육사를 그의 친구였던 시인 신석초는 이육사의 모습을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얼굴, 상냥한 눈빛과 조용한 말씨를 지닌`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육사문학관이 있는 안동 원촌마을은 이육사가 나서 자란 곳으로 육사의 시심이 묻어 있다. 이들 흔적을 오래 전하기 위해 이육사문학관이 건립됐으며 육사 생가인 육우당이 복원되고 육사 묘소에 청포도 시비, 절정 시비, 안동에 광야 시비가 세워지고 육사의 시상지가 탐방로로 개설돼 있다.  올해는 이육사 탄생 120주년, 순국 80주년이 되는 해다. 경북북부보훈지청은 지난 4월 이달의 우리지역 현충시설로 육사 시비를 선정했고 지역출신 독립유공자인 육사 이원록, 석주 이상룡, 운강 이강년, 박열 의사 네 분의 캐리커처를 제작해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배포했으며 이육사의 묘소를 새롭게 단장하고 초등학생 보훈사적지 탐방 프로그램에 이육사문학관을 코스에 포함해 어린 학생들이 이육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나라 잃은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한 젊은이로서 그의 저항정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이다. 호수같이 푸른 안동호와 녹음이 짙은 산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이육사의 문학과 독립운동 활동을 조명할 수 있는 공간인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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