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헌정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은 비(非)정치인의 첫 대통령 직행,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첫 5년 만의 정권교체까지 윤 당선인이 새로 쓴 역사에는 향후 5년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0.73%포인트(p)의 최소 득표율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점과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곧바로 마주한 `여소야대` 정국의 높은 벽, 여기에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움직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러시아와 미국·유럽 간 신냉전, 이에 따른 국제 경제의 위기 등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서 풀어가야 할 현안은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10일 0시 新집무실 지하벙커서 합참 보고로 대통령 업무 개시… 용산시대 개막
윤 당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하는 10일 0시 옛 국방부 청사에 마련된 새 대통령집무실 지하벙커(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합동참모본부 보고를 받는 것으로 대통령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보고를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자택에서 보고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윤 당선인이 `지하벙커`로 이동해 보고를 받기로 한 것은 집무실 이전에 따른 일각의 안보 공백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최근 잦아진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따른 국가 안보 불안을 해소하면서도 용산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는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축하 타종 행사가 진행된다.
◇10일 오전 11시 국회 잔디마당서 대통령 취임식
윤 당선인은 같은 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국회로 이동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처음으로 인사한다.
내외빈과 국민희망대표 등 4만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취임식은 오전 10시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오전 11시 윤 당선인과 김건희 여사가 함께 입장하며 공식 행사의 막을 올린다.
윤 당선인은 과거 대통령 당선인과 달리 국회 본관 앞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고 국회 정문 앞에서 내려 연단까지 약 180m를 김 여사와 함께 걸어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으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대통령으로서의 모습을 부각할 방침이다.
윤 당선인은 무대 중앙에서 4만석의 야외 객석을 향해 10m 정도 튀어나온 돌출 무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약 25분간 취임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약 1시간으로 예정된 취임식이 끝나면 곧바로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이동한다.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인근 경로당과 어린이 공원에서 열리는 환영행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여소야대 높은 벽…`반쪽 내각` 출범, 차관 인선으로 보완
윤 당선인은 취임식이 끝난 후부터 산적한 현안을 풀어야 한다. 당장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함과 동시에 아직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등 나머지 후보자들의 인선을 마무리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란 예상이다.
여야는 그동안 인사청문회를 진행해 추경호 기획재정부·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화진 환경부·이정식 고용노동부·이종섭 국방부·조승환 해양수산부·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5명의 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을 강행하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윤 당선인이 이들에 대한 보고서 재송부 시한을 9일로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인사청문회법에서는 청문회 종료 다음날부터 10일 이내에 대통령의 재송부 요청에 국회가 응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장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빠르면 오는 12일부터 윤 당선인이 대통령 자격으로 이들에 대한 임명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여전히 국회 인준에 발이 묶여 있는 점은 난관이다. 장관 후보자와 달리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준(재적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수인데 민주당의 반대로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경우 윤 당선인은 김부겸 현 총리의 제청으로 추경호 경제부총리(기재부 장관)를 임명하고 추 부총리가 총리 대행으로 제청권을 행사해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날 15개 부처 차관 20명에 대한 인선을 발표했다. 윤 당선인 측은 "윤 당선인이 정부 운영에 어떠한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며 "공석이 예상되는 장관 자리에 차관이 대리로 참석해 가는 방안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당선인 측은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즉시 차관 인선에 서명하고 발령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대 강` 대치 불가피…협치 전망은?
윤 당선인이 장관 임명을 강행할 것이 유력하면서 민주당과의 `강 대 강` 대치가 정권 초반부터 정국을 뒤덮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 총리 후보자뿐만 아니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까지 민주당이 결사 반대하고 있는 상황도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윤 당선인이 한동훈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 요청 후 그대로 임명을 강행한다면 정국은 살얼음판 위를 거닐며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및 21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 등에서 극한 대립으로 내달릴 전망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만난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는 12일이나 13일 정부에서 추경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여 본회의 소집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 원구성과 관련해서는 "아직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민주당이 하반기에도 법사위원장 등을 사수할 것이라고 밝혀 충돌이 예고됐다.
이같은 여소야대는 윤 당선인이 다음 국회가 들어서는 오는 2024년 6월까지 안고 가야 하는 현실이다. 좌우로 갈라진 국민들을 통합하고 야당과의 협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셈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장 지방선거에서의 국민의힘의 성적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2년간 매번 민주당과 부딪힐 텐데 이게 다음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봐야 한다. 이기더라도 여당에 힘이 실리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윤 당선인은 임기 내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답답한 남북 관계·국제 정세…바이든과 정상회담이 가늠자
대외적 상황도 녹록지 않다.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은 조만간 핵실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변되는 신냉전에 고유가·고금리 시대로의 진입, 이에 따른 국내 물가 상승 등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수습하는 것도 윤 당선인의 몫이다.
윤 당선인은 우선적으로 한미동맹을 재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으로 보인다. 단절됐던 일본과의 관계 역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바탕으로 복원에 힘쓸 것이란 예상이다.
당장 오는 21일 열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향후 5년의 외교 정책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인수위 측은 이번 정상회담 의제로 △한미동맹 발전 및 대북정책 공조 △경제안보 △주요 지역적·국제적 현안 등을 꼽고 있다.
특히 윤 당선인은 △`핵우산` 등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재확인하고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한미연합 군사훈련 정상화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개 등 대북 정책을 합의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견제`에 대한 우리 측의 참여 의사를 살피고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점치는 시각이 많다.
아울러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미국 측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우리나라에 요청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양국 정상이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사안을 절충해 합의점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윤 당선인이 첫 외교 시험대에서 안정적인 합의안을 도출할 경우 대북 정책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 측면에서 실리를 챙기면서 답답한 국내 정세를 타개할 묘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인·태 지역 다자 협의체를 통한 기술표준, 공급망 재편 등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며 "이게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동아시아 순방의 핵심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같은 일련의 구상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측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제시될 수 있다"며 "우리 기업들에 직접적으로 투자를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박삼진 기자wba11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