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수평선에 점 같은 바위덩이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사람들의 풋풋한 냄새와 흙이 사라져 가는 길속에서 울릉군 만이 가지고 있는 걷고 싶은 흙길 10번째 이야기로 이제 마감하게 됐다. 자연과 사람이 어울어 지는 울릉군의 현재 모습들을 나름 독자 여러분이 여행하실 때 조금이 나마 도움이 되시실 바라는 마음에서 소개해 왔는데 도움이 됐는지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그동안 관심을 가져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울릉군민들의 그려놓은 자연속의 흙길 10번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가을이다. 산꼭대기를 시작으로 어떤 나무는 갈색으로 탈색되고 다른 나무는 빨간색으로 염색한다. 힘없는 나뭇잎은 뿌리로 떨어져 다시 흡수되기를 기다린다. 차곡차곡, 곱게 가을은 익어간다. 한여름 탈까 싶어 노출을 최대한 얇게 막고 다니던 관광객들은 어느새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갈아 입고 섬 안 구석구석 누빈다. 울릉도에 가을이 왔다. 한여름 홍역처럼 치고 달아난 그들 뒤로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가방 메고 황홀한 자연으로 꽉 둘러싸인 이곳, 울릉도를 탐하러 오고 있다. 일주도로를 벗어나 안으로 들어서는 무거운 짐 진, 가벼운 걸음이 있어 울릉도의 길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열 번째, 약속한 마지막 걸음이다. 야속하게도 아직 많은 길이 남아있다. 긴 시간 오랜 걷기를 했다. 이번 걸음은 현포를 시작으로 평리를 거쳐 추산을 넘어 천부로 이어지는 약 3시간 정도의 걷기다. 이번 옛길은 처음 걸어보는 길이다. 가을의 터질듯 한 풍요로움에 풀들이 길을 가리고 있어 돌아가기를 여러번 했다. 한 시간 남겨둔 지점에서 물도 바닥나고 한 개의 사과로 허기를 채운 뱃속은 바닥에 주저앉게 했다. 마지막 마을이 보이고 길을 빙 돌아가야 했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어 어른들이 걸었던 길따라 정확히 천부로 내려섰다. 감사했다. 길 곳곳, 삶의 흔적은 유물처럼 나타난다 넓은 현포항의 오전은 한가하다. 햇살은 점점 농익어 고개를 들 수 없다. 표지판을 기준으로 왼쪽 민가 옆을 지나 밭 가로 올라 겨우 고개를 든다. 앞은 숲이고 뒤는 바다다. 나물밭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산속으로 들어간다. 거미줄이 얼굴을 감싸고 칡이 발목을 걸지만,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폐가가 보인다. 집 뒤에는 오랜 세월 이 터를 지키고 생활했을 듯한 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미루나무는 하늘 찌를 듯 높이 초록을 올리고 있다. 집 앞 돌담을 지나 왼쪽으로 길을 옮긴다. 길은 가파르고 떨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솔잎들이 걷기를 방해한다. 자꾸 미끄러진다. 덩달아 마른 솔방울이 밟히며 경쾌하게 부서진다. 경사 심한 산을 오르기 위해 내어놓은 길은 짧은 갈지자 모양이다. 열 발자국 옮기지도 못하고 다시 방향은 틀어지고 그렇게 계속 길은 이어진다. 처음부터 길이 힘들게 한다. 땀이 나기 시작하고 해를 가려주던 모자 테두리가 흥건해진다. 세 모퉁이 돌고 쉬고, 다시 세 모퉁이 돌며 올라간다. 길은 길고 숲은 진하다. 몸속 깊숙이 찌들어 있던 삶의 부패물을 가쁜 호흡에 실어 밖으로 내어놓았다. 자연은, 나무는, 풀들은 그 부패물을 깨끗하게 정화해 다시 우리 폐 속으로 들여준다. 오르막은 끝이 없다. 어느샌가 입술은 마르고 몸의 열린 공간은 스스로 최대한 넓혀 제 기능을 한다. 눈을 돌려 주위를 살핀다. 전호나물이 가득하다. 봄나물 철에 동네 아낙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길이었을 것이다. 모퉁이 올라서 그대로 앉아 잠시 쉰다. 내가 앉은 이 흙 위에 예전 누군가 이산을 넘으며 쉬었던 자리일 것이다. 발아래 흙에는 그들의 체온이 남이 있다. 출발한 지 30여 분 후, 또 다른 집터가 보인다. 이 산중에 집터가 있다. 집의 뼈대는 사라지고 그 흔적을 양철지붕 조각이 보여주고 있다. 돌로 쌓은 축대도 보인다. 집 옆을 돌아서니 위에서 내려온 흙들이 길을 메워 바닥을 잡고 움직인다. 평지가 보인다. 아래가 훤하다. 산중에 어울리지 않게 팻말이 서 있다. 발아래는 시원하게 뚫려 있다. 팻말에는 `추락 주의` 글자가 선명하다. 산사태가 이 공간을 시원하게 넓혀 둔 모양이다.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칡과 풀들이 길의 흔적을 덮고 있어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천천히 풀을 헤치며 걸어야 한다. 하지만 눈은 호강한다. 시원하게 뚫린 풍경에 산 아랫 마을과 현포항이 눈 안에 가득 찬다. 그곳을 벗어나 조금 더 옮겨가면 대나무 숲이 나오고 또 다른 사람의 흔적이 나온다. 넘어진 전봇대를 지나면 길은 편안하다. 하늘도 보인다. 하늘 아래 뒷산이 보인다. 평리마을 뒷산이다.평리마을은 넓고 편안하다 현포에서 출발해 약 한 시간 걸어올라 평리마을에 도착했다. 평리마을은 넓다. 훤하게 바다를 향해 뚫린 마을은 집들이 공간만큼 넓게 자리하고 있다. 한집 또는 두 집씩 모여 이웃하고 그렇게 여러 집이 모여 평리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한중간은 평지인 듯 경사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 마을로 내려선다. 길은 몸이 스스로 뛰어 내려가게 만든다. 급경사 길이다. 마을 한중간 생태 탐방로 바닥 표시를 따라 마을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마을은 조용하다. 시멘트길 따라 걷는다. 길옆에는 도랑이 있다. 좁은 도랑이지만 시원한 소리를 내며 물은 흘러 바다로 내려간다. 큰길은 건너 언덕을 올라 또 다른 마을을 지난다. 강아지들이 시끄럽게 이방인을 경계한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 완만한 길들이 계속 이어진다. 밭에는 바다에서 쓰일 그물들이 넓게 덮여있다. 그 밑에는 곧 결실을 이룰 콩이 가득하다. 꿩 때문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순간순간 입에서 정화되지 않은 단어들이 수시로 넘나든다. 풀숲에서 보금자리를 지키던 꿩들이 생각지도 않은 이방인 탓에 놀라 소리를 내며 하늘로 도망간다. 그 소리에 더 놀란다. 또 다른 마을이 보인다. 이정표 따라 걷다 보면 길 끝 집이 나오고 더는 길이 없다. 어르신이 마당을 지키고 계신다. 길을 여쭈니 밭 한중간으로 직선으로 밑으로 내려가라 하신다. 풀이 있어 길이 안 보일 거라시며 가지 말라 하신다.천천히 내려서 걸어보니 길은 안 보인다. 그냥 아래쪽 건물을 목적지 삼아 그냥 풀 헤치고 내려선다. 평리마을에 가수 이장희가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그 옆에 아주 큰 건물을 짓고 있다. 집 앞에 올라서니 인기척이 없다. 언덕을 올라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창고를 두서너 개 지나고 민가를 마지막으로 평리 마을을 벗어난다. 굵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 사이에는 해국이 만발해 있다. 일주도로가 보이고 송곳봉 바로 밑이다. 여기서 평리길은 끝나고 다시 추산으로 이어진다.세월의 돌너덜을 지나면 추산마을 나무다리를 지나 송곳봉 앞으로 올라선다. 시멘트길 마을을 지나는 동안 지친 발목을 달래듯 산길은 푹신하고 시원하다. 걷는 길 왼쪽은 바다고 오른쪽은 거대한 바위, 송곳봉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돌너덜 길이 시작된다. 위치로 보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수없는 시간 동안 떨어져 내려온 송곳봉의 잔재들일 것이다. 돌은 크고 넓다. 징검다리 건너듯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순간 덜커덕 움직이는 돌도 있고 풀이 덮여 있어 미끄러운 돌도 있다. 한참을 긴장하며 걷는다. 칡넝쿨 울타리를 지나면 훤하다. 추산이다. 성불사 절 옆으로 길이 이어진다.두 시간을 걸었다. 오는 길에 평리에서 표지판을 보지 않고 잘못 접어들어 10여 분 허비한 탓에 빨리 움직여 걸었다. 서서히 다리에 힘이 빠진다. 방금 돌너덜을 긴장하며 건넜던 이유도 있다. 추산마을 끝과 천부로 이어지는 탐방로 표지판 아래서 한참을 망설인다. 이 정도 걷기면 충분하다. 내려가서 버스 타고 돌아갈까.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또다시 길을 잘못 접어들어 한참을 고생했다. 추산에서 천부로 이어지는 산길의 초입은 안내판 바로 몇 발짝 지나면 바닥에 표시가 있다. 길 왼쪽으로 옅은 길이 나 있다. 올라서면 산길이다. 길이 험하다. 80도 가까이 되는 산의 경사면을 45도 정도의 갈지자 길이 한참 이어진다. 나뭇가지로 끈적이는 얼굴을 뒤덮는 거미줄을 헤치며 나무 숲을 지나고 동굴처럼 어둡고 빽빽한 대나무숲을 지나면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집터도 보이고 풀로 무성한 버려진 밭도 보인다. 순간 울타리가 보인다. 사람이 산다. 열린 울타리 넘어서니 오리가 마당을 지키고 농기계가 보인다. 이제 천부 마을인 듯 천천히 집 앞을 지나 내려서니 천부 마을이 한눈에 훤하게 들어온다. 차폭만큼 길이 나 있다. 길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모퉁이 돌아서니 커다란 하얀 개 두 마리가 길 양옆을 막고 으르렁대고 있다. 순간 사유지라 저렇게 해놓았다는 판단에 다시 되돌아올라 한참을 이리저리 길을 찾았다. 없다. 아찔하다. 되돌아갈 수도 없다. 밭 가에 창고 같은 건물이 보이고 방송안테나가 보인다. 한걸음에 달려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내어보고 마당을 지키는 개도 달래보지만, 사람은 안 보인다. 계단에 벗어 놓은 신발이 있어 문을 크게 노크해 낮잠 자던 주인을 깨워 길을 물었다. 그 길이 맞다 한다. 개 옆으로 천천히 지나가면 안 문단다.허탈하고 안도한 걸음으로 다시 그 길을 걸어 내려와 묶인 개들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선다.순간, 길이 아름답다. 너른 길에 노란 나뭇잎과 갈색 잎들이 덮고 있다. 길 양옆으로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가을 색을 스스로 입히고 있다. 모든 피곤이 풀린다. 천천히 길을 벗어나 군부대 사격장을 만난다.사격장 정문을 따라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 곡선으로 난 시멘트 길이 이어진다. 길 주위는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소나무 숲길이다. 밭에는 한창 더덕 씨앗을 채취 중이다. 노부부는 씨앗을 털어 자루에 담으며 올해 씨값이 얼마고 작년에는 얼마였다. 힘들어 더는 못하겠다시며 이방인에게 푸념하신다. 아마 내년에도 노부부는 올해처럼 더덕을 캐고 씨앗을 거둬 겨울을 날 것이다. 아래로 내려서면 바로 천부마을이다. 하지만 옛길은 아니다. 다시 밭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언덕을 넘어야 한다. 시멘트 길따라 걷다 또 다른 노부부를 만나 길 안내를 받는다. 저 아래 가면 길이 없다. 그냥 밭 사이로 걸어가면 된다 하신다. 그렇게 내려서니 바로 천부마을 뒷동네다. 바닥 표지판을 보니 산으로 다시 올라서라 표시돼 있다. 바로 마을인데 어찌 산으로 가라 할까 싶어 멋대로 길따라 내려서니 막다른 곳이다. 표시는 제대로였다. 밭을 가로 질로 올라서니 소나무 숲이고 산길은 짧게 끝나고 본천부 마을이 보인다. 밭에는 마지막 가을 준비가 한창이다. 호박으로 가득했던 밭에는 겨우내 먹을 호박 몇 덩이만 남기고 모두 호박엿 공장으로 팔려간 모양이다. 줄기만 앙상하게 겨울을 준비 중이다. 네 시간을 걸었다. 나리분지로 이어지는 큰길에서 아래로 가면 오늘 걷기의 목적지인 천부마을이다. 오늘 현포, 평리, 추산, 천부 네 개의 마을에 발자국을 남겼다. 아주 오래전 어른들이 걸었던 그 길을 걸었다. 그들의 고단함과 대단함이 발을 타고 가슴으로, 머리로 올라왔다. 발로 걷지 않고 편안히 앉아 모퉁이 돌 때마다 창문 안에서 환호성 지르는 그런 구경보다 내 땀과 내 발바닥으로 그 모퉁이 돌 때마다, 언덕 올라설 때마다 만나는 새로운 풍경과 장면들이 가슴속으로 소리 지르게 만든다. 가을이 짙어져 겨울 냄새가 산을 덮으면 길은 훤할 것이다. 자리를 지키던 풀들도 갈색으로 변해 바람에 부서지고 날아갈 것이다. 길을 내어줄 것이다. 늦가을 도드라진 길을 다시 걷을 것이다. 지난 6월부터 5개월 동안 울릉도 속, 길을 걸었다. 누구나 한 번쯤 걸어봐야 할 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 세월에 묻혀 잊혀 가던 옛길, 모두 삶의 길이었다. 예전 어른들이 살아가기 위해 내어 둔 길이었다. 아직 구석구석 많은 길이 세월에 묻혀가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울릉도의 길은 참기 어려울 만큼 걷고 싶은 길이다. 온몸을 길 위에 올려두고 차근차근 단을 맡겨 걸어보라 하고 싶다. 울릉도의 길은 고단함과 가벼운 기쁨이 묻어있는 길이다. 길은 세월 속에 도드라지게 살아난다. 임정은 기자0547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