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간 이어진 집중호우로 대한민국의 들판과 축사는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벼, 고추, 수박, 깻잎 등 국민 밥상에 오르는 주요 작물은 물론 닭과 오리 등 축산 농가까지 한꺼번에 침수와 폐사 피해를 입으며 우리 농업은 지금 유례없는 재난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 동안 전국 농작물 침수 면적은 무려 2만4247㏊에 달했다. 이는 서울 면적(6만500㏊)의 약 40%에 달하는 수준이다. 불과 며칠 만에 지난 2020년 여름 장마(54일간)로 발생한 농작물 피해의 70%를 뛰어넘는 재난이 벌어진 셈이다. 게다가 침수로 인한 직접 피해뿐 아니라 이후 이어질 병충해와 생육 저하 등 2차 피해까지 감안하면 실질 피해는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축산 피해는 더 심각하다. 닭, 오리, 돼지 등 총 103만마리의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지난해 장마 당시 91만마리 수준의 피해를 단 4일 만에 훌쩍 넘은 것이다. 이미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수박은 한 통에 3만원이 넘는 `귀한 몸`이 됐고 깻잎 가격은 전월 대비 9.4%, 전년 대비 14.9% 상승했다. 육계, 달걀 가격도 오름세다.  이는 단순한 시장의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가격 상승의 전조일 뿐이다. 더욱이 이들 작물 대부분은 여름철 소비가 집중되는 품목으로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를 강하게 자극할 수밖에 없다.  과거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장마철 수해는 농축산물 가격을 밀어 올려 2023년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전월 대비 1.1%포인트나 끌어올렸다.  그해 물가 상승률은 2%대에서 3% 중반대로 급등했고 그 주범이 바로 농산물과 식료품이었다. 이른바 `폭우발 물가쇼크`는 당시 내수 심리를 강타하며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폭우의 시점은 더욱 절묘하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사령탑이 교체된 직후이자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 기조 하에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치며 시장의 기대심리를 끌어올리던 참이었다. 새 정부 경제팀은 물가 안정과 내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폭우는 그들에게 첫 번째이자 최대의 `정책 리더십 시험대`가 되고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내수 회복은 불가능하다.  소비자들은 체감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당장 밥상에서 수박, 고추, 계란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그 어떤 재정 정책이나 내수 부양 카드도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저소득층, 취약계층의 생계 부담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수해를 단순한 농업 재난으로만 봐선 안 된다.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라 민생 경제와 직결되는 기반 산업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복구 지원에 국한된 임시 처방이 아니다. △농작물 재해보험의 실효성 강화 △축산 방재 시스템 전면 재점검 △스마트농업 기반 구축 △피해 농가에 대한 선지급 보상 등 종합적이고도 중장기적인 대책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정부의 물가 대응 체계도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단순히 농산물 비축 물량을 푸는 방식이나 수입 확대에 의존해서는 일시적 완화에 그칠 뿐이다. 현장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유통구조 전반에 대한 점검과 투명성 확보를 병행해야 한다.  이번 폭우는 어쩌면 예고된 재난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상기후, 잦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는 기후 위기의 `일상화`를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장 대응은 뒷북이고 피해 농가는 재해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자연재난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민생경제를 뒤흔드는 중대한 국가 위기이며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진정한 경제 리더십은 숫자가 아니라 국민 밥상과 삶의 무게를 낮추는 데서 증명된다. 지금이 그 첫걸음을 내디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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