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대표화파인 절파(浙派)는 선덕년(1425년~1435년)과 홍치년(1488년~1503년)에 최전성기를 이뤘다.
원말 사대가(황공망, 왕몽, 오진, 예찬)의 화풍을 이어 받았으며 절강 지역의 예술인으로 이뤄졌다.
북종화로 분류되며 남송 원체화풍의 직업화가들이 많았다. 이들을 행가(行家)라 불렀다.
이들은 조방한 수묵화풍으로 뛰어난 용필과 필묵의 거친 웅장함을 보여줬다. 대표화가인 대진(戴進)과 오위(吳偉)를 이어 장소, 장숭, 정전, 여기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사군자의 표현과 기법이 다양해지고 원체화풍의 세밀함과 색채 표현 영역이 확대돼 정신적 사의성이 강하게 대두된다.
이러한 정신적 흐름의 근원은 송대 소동파의 적벽부를 통해 시와 철학, 그림이 명대에 어울려 질 수 있었던 근원을 알게한다.
소동파 `적벽부`의 일부를 보자.
"가는 것은 이물과 같으니 일찍이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차고 비는 것은 저 달과 같으나 끝내 줄지도 늘지도 않으니".
문인화의 사의적 표현에 철학이 담기게 되면서 폭 넓은 사고가 그림으로 융합되는 시대가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