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10일 `대통령의 공간`이었던 청와대가 74년 만에 국민들의 품에 안겼다.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 밖으로 나간다고 국민들과 약속을 했으나 이행하지 못했다.
새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은 취임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동시에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한다고 약속했고 이날 그 약속이 지켜졌다.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로 사용되면서 권위와 폐쇄를 상징했던 이곳이 문화,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는 약 25만㎡(약 7만6000평)의 면적으로 미국의 백악관보다 3배 이상 큰 쉼터로 바뀐다는 것 자체만도 국민에게 큼직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180여종 5만여 그루의 울창한 숲과 역사의 숨결이 가득한 집무실은 물론, 녹지원과 전통 한옥 양식의 상춘재는 보물 이상으로 값진 `덤`이다. 녹지 부족과 부지 확보의 탓에 대형 도심 공원 조성을 꿈꾸기 힘들었는데 모처럼 기분을 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북악산과 옛 궁궐, 성곽까지 어우러진 도심 명소가 개방됐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자부심과 국가 품격에도 큰 플러스 효과를 안겨 줄 것이다. 또 경제적 부수 효과도 상당할 전망이다. 대통령의 옛 별장으로 쓰이다가 2003년 개방된 충북의 청남대도 코로나가 번지기 전 까지는 관람객이 연간 80만명을 넘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청와대 개방은 국민 발길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옛 미군기지 등의 부지에 300만㎡ 크기로 조성 중인 용산공원에 비하면 청와대 공원은 협소하다. 하지만 역사, 문화적 가치와 의미, 그리고 국민적 관심은 용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여당이였던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 반대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역대 대통령이 `탈(脫)청와대` 선언을 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1992년 대선 후보 시절, 군사독재와 결별하겠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대신 취임 후 청와대 안가(安家)를 허물고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됐던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1998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과천 제2정부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경호, 비용 등의 문제로 백지화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또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칠궁(七宮·조선 왕들의 생모 7인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을 개방하는 한편 청와대 관람 허용 대상도 단체 관람객에서 개인·외국인 관람객으로 넓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 초반, 서울시 청사 별관으로 집무실, 비서실, 경호실 이전을 검토했지만 비용과 국회 승인 문제 등으로 중단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광화문대통령시대` 준비자문위원으로 임명하는 등 집무실 이전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이유 또한 경호, 비용 문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광화문 대통령` 공약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 폐쇄에 안주한 불통 지도자들의 안식처였던 청와대 개방에 많은 국민들은 갈채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