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경북- 4.울릉도의 봄 온 세상이 초록이다. 비릿한 바닷냄새가 바다가 아닌 산 위에서 내려온다. 먼 산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겨울을 붙잡고 있고 간간히 얇은 눈도 안갯속에서 내린다. 그 옅은 겨울 속에서 바람이 아래로 불어 사람들에게 봄을 알린다. 바다도 겨우내 시퍼렇게 추위에 떨다 이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하얀 원색의 섬이 자연 그대로 초록의 섬으로 시작하는 한 계절이 시작됐다. 땅밑 온갖 좋은 것들만 뽑아 올린 듯 섬 안의 초록들은 기운차다. 산도 초록, 밭도 초록이다. 울릉도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밭을 차지하고 있는 초록은 흙 한 무더기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 초록 사이에 나물 자루를 옆에 두고 등만 드러낸 농부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산에 밭을 일궈 나물을 길러낸다. 이름만 밭이지 산이다. 결국, 그 나물은 산나물이다. `울릉도에 밭이 없을 것이다`는 누군가의 확고한 조언과는 반대로 밭이 많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밭 한 덩이가 수만 평의 너른 규모는 아니다. 그래서 안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일주도로 길가를 따라 다니면 초록으로 뒤덮인 풀밭 같은 경사진 밭이 존재한다.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토록 유명한 울릉도 자생 산나물들이다. 봄철 울릉도를 아우르는 초록은 부지갱이, 미역취, 삼나물, 고비, 모두 그 밭에서 올라온다. 더 깊은 산 속에는 명이가 울릉도의 봄을 흔들어 놓는다. 가장 먼저 겨우내 마른 사람들의 입안을 채워주는 `봄`은 `부지갱이` 나물이다. 즐겁다. 눈이 즐겁고, 입안이 초록이라 황홀하고, 콧등으로 봄이 타고 올라 기운이 들어선다. 농부들은 따개비처럼 그 초록 속에 엎드려 낫으로 한잎 한잎 부지갱이 줄기를 자르고 자루에 담아 나온다. 가파른 칼등 같은 밭에서 몸은 가냘프게 위태롭다. 나물 베는 아주머니가 푸념한다. "육지 밭에서 일하면 방석이라도 엉덩이에 달아 쉬지만 여기서는 한발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버티고 다른 발로 이리저리 끌며 자리를 옮긴다. 쉴 때도 다리에 힘을 줘야 아래로 안 미끄러진다. 당연히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렇게 담아내고 고이 수확한 부지갱이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우리 입속으로 봄 향기처럼 밀려들어 간다. 울릉도의 봄은 그렇게 입속으로 먼저 온다. 울릉도의 밭은 평지가 거의 없고 대부분 서 있기조차 힘든 경사지 밭이다. 작은 농로 따라 속으로 들어가면 경사는 더욱 가파르다. 어찌 저런 곳에 사람이 살고 밭을 일구고 나물을 길러낼까. 자연스럽게 입 벌리고 감탄한다. 이곳의 봄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닌 모양이다.수년 전 가수 이장희는 이 부지갱이 나물이 좋아 울릉도에 둥지를 틀었다고 방송에서 이야기했다. 그 뒤 몇 년 동안 울릉도 부지갱이는 이장희 나물로 유명세를 떨치다 이제 원래의 모습대로 울릉도 부지갱이로 원위치했다. 외지인이 들르는 식당 테이블에 부지갱이 나물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 맛을 보고 그 나물을 찾아 두 손 가득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해 이른 봄 그들은 전화로, 인터넷으로 그 나물을 주문한다. 그 울릉도의 봄맛, 그 나물 맛을 잊지 못해 물어물어 연락이 온다. 농부들은 고맙다 한다. 이렇게라도 기억해주고 찾아줘서 해마다 고맙다고 인사한다. 한 잎 한 잎 정성으로 수확해 고이 담아 보낸다. 그들이 울릉도의 봄맛을 잊어버리면 이곳의 농부들은 힘들다. 부지갱이, 부지깽이, 부지깨이, 발음도 맛처럼 제각각이다. 고급스러운 이름은 `섬쑥부쟁이`다. 언뜻 보면 그냥 풀이다. 울릉도 부지갱이는 향기가 진하고 조직이 연해 씹는 맛이 부드럽다. 또한, 카테킨을 비롯해 다량의 폴리페놀 및 플라보노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고 비타민A, C가 풍부하고 단백질, 지방, 당질, 칼슘, 인, 섬유질 등 풍부한 영양소가 들어있어 그야말로 무공해 건강 나물이다. 나물에는 저마다 독특한 향이 있다. 그 향을 잊지 못해 해마다 제철이면 그 나물을 찾아 건강을 챙긴다. 후각과 미각으로 먼저 계절을 안다. 울릉도 부지갱이 역시 그렇다. 잘라 낸 생부지갱이를 손에 쥐고 줄기 부분 냄새를 맡아보면 독특한 향이 난다. 지금 울릉도는 부지갱이가 지천이다. 마을마다 퍼지는 독특한 냄새와 비릿함이 모든 신경을 깨운다. 미각을 흔든다.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생나물과 건나물로 생산됐지만, 요즘은 생나물로 바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먹기 좋게 삶아 급속냉동해서 나중에 해동해 바로 먹기도 한다. 또한, 장아찌로 만들어 연중 독특한 음식으로 먹기도 한다. 나머지는 끓는 물에 삶아 말려 묵나물로 만든다. 부지갱이 나물 농사에서 가장 분주하고 힘든 일이 있다.나물을 삶아 말려 건나물로 만드는 과정이다. 건나물은 언제라도 꺼내 물에 불려 다시 봄을 불러올 수 있는 묘한 보관방법이다. 나물 삶을 때면 마을은 전쟁터처럼 분주하다. 4월이면 뜨거운 기운이 온 마을을 덮는다. 거대한 솥에 물을 끓이고 나물을 쏟아부어 삶는다. 3인 1조로 작업을 한다.불 조절, 나물 넣고 뒤집기, 삶은 나물 옮겨 널기, 이렇게 세 사람이 움직인다. 이렇게 삶아진 부지갱이는 밤낮으로 봄 햇살과 바람에 고슬하게 말리고 다듬어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나물 삶아 널어 말리는 며칠 동안 동네는 비상 상황이다. 하늘이 도와야 하고 몸이 성해야 한다. 비 소식이 있는 날이면 잠도 못 자고 일은 두 배 세배 힘들어진다. 빗방울이 조금이라도 내리면 자다 맨발로 뛰어나와 나물을 거둔다. 말라가는 나물에 비가 내리면 상품성이 떨어지고 판매가 불가능하기에 번개처럼 움직인다. 동네 누구라도 먼저 빗방울 소리 들으면 고함치고 힘을 모아 나물을 안으로 거둬들인다. 하늘이 도와주고 바람과 햇살이 도와주면 사나흘 지나면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농부들은 하늘 보고 고맙다 한다. 이렇게 뜨거운 봄으로 만든 부지갱이 나물은 사시사철 그 맛 그대로 언제나 즐길 수 있다. 부지갱이나물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울릉도를 깨우는 봄 전령사다. 4월 한 달을 뜨거운 봄을 보낸 부지갱이 농사짓는 농부는 이른 내년 농사를 준비한다. 울릉도 농부들은 1년 중 한 달의 수확을 위해 열한 달 동안 정성을 들인다. 거름을 넣고 하늘이 마르면 물을 대고 나물 사이 쑥쑥 올라오는 잡초를 뽑아낸다. 내년을 기약하며 수확을 갈무리한다. 임정은 기자0547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