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 열흘 남짓 시간이 흘렀다. 이긴 쪽도 진 쪽도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하다.
얼마전 보수의 철옹성인 대구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자영업을 하는 지인을 만났더니 격렬하게 반가움을 드러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마음이 이해되고 안쓰러웠다.
대구 토박이인 그는 지난 20대 대선부터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고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가 당선되자 기쁜 마음을 속으로 삭이고 혼자 몰래 울었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대놓고 기쁜 마음을 드러내면 생계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그러면서 그는 "대구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구 사람들은 정도 많고 의리도 있어 좋은 데 보수 일변도의 정치가 문제"라며 안타까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통합과 영남 포용을 위해 동진(東進)정책을 한지도 어언 30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TK(대구·경북)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이번에도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대구에서 23.22%를 득표해 지난 대선 대비 1.62% 증가에 그쳤다.
고향인 경북에서도 25.52%를 얻어 지난 대선 대비 1.72%가 늘어났을 뿐이다.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고 득표율이 이 정도이다. 철옹성 중 철옹성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대구에서는 목욕탕을 가도, 공원을 가도, 시장을 가도 대선 결과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상황이 이러니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기쁜 마음도 자제하는 것이다. 괜한 충돌을 피하려는 뜻이다.
대구와 경북은 변방도 시골 오지도 아니다.
한때 권부(權府)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했고 산업화의 중심 지역이기도 했다.
경북 경주시에서는 올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린다.
대구에서는 내년 8월 세계마스터즈 육상경기대회가 열린다. 이 두 국제 행사는 중앙정부와의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 여부가 흥행을 좌우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서 시 주석을 경주 APEC 정상회의에 공식 초청하는 등 경주 APEC 성공을 위해 발빠르게 뛰고 있다.
필자도 최근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조직위원회를 방문해 중국 홍보방안을 협의했다.
국제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여야가 없다.
대구의 경우는 홍준표 전 시장의 사퇴로 사령관 격인 대구시장도 공석이다. 그런 마당에 마음을 열지 않고 중앙정부와 협력하지 않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태도이다.
자칫하면 국제 행사를 망치고 지역 발전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TK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성장과 발전의 길을 가야 한다. 대선 결과를 차분히 받아들이고 이재명 정부와 협력해 발전하는 길을 찾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린 시절 필자를 안아주고 키워준 정겨운 대구가 퇴행의 길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