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당일인 4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사법부와의 논의나 토론,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으나 민주당은 `속도전`에 나섰고 결국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숙려` 기간을 갖기로 했다. 사법개혁 본격화 시점도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한 직후였다. 법조계에서 `사법개혁의 의도가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법관 증원이 우리 사회 규범을 제시한 전원합의체 선고 기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법관을 늘렸다가 하급심이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관 증원 역기능과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두고 법조계와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은 상고 사건 가운데 법령 해석 기준이 필요한 주요 사건만 맡자는 게 상고법원의 취지였다. 이렇게 해 대법관의 업무 과중에 따른 상고심 사건 적체 및 재판 지연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상고법원 도입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법원행정처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사법행정 실세인 임종헌 차장 등 행정처 간부들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정부와 재판 거래를 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이다. 결국 상고법원 도입은 무산됐고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은 재판에 넘겨졌다. 3부 요인(행정부 수장·입법부 수장·사법부 수장) 중 1명인 대법원장 출신 인사가 기소되는 사법부 초유의 사태였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모두 실형을 피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47개 혐의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고 임 전 차장은 지난해 2월 30여개 혐의 가운데 일부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의 항소심은 진행 중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법원행정처의 민낯이 사법농단으로 드러났다는 시각이 여전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실체만 놓고 보면 의혹 자체가 사건 당사자들의 실제 행위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상고법원 도입의 당위성이 있는데도 사법농단 여파로 논의 자체가 차단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종의 `금기어`가 된 셈이다.  대법관 증원과 상고법원 도입 가운데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이제 와 논의하려는 게 아니다. 양자 모두 `재판 지연·사건 적체`를 해소하는 방안인 점이 핵심이다. 상고심 사건 적체 및 재판 지연이 그만큼 대법원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 시절에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 방안을 검토했다. 현재 대법관 수는 14명이다. 상고심 사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고사건은 3만7669건에 달한다. 실제 재판 업무(소부재판 기준)에는 대법원장과 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관 한 사람당 300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사법농단 여파로 상고법원을 내세우기 어렵다면 대법관을 증원해 상고심 지연 문제 등을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  대법관 증원으로 요약되는 이재명 정부의 사법 개혁을 마냥 비판적으로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법조계에선 우려가 계속 나올까. 그것은 방향과 내용이 아닌 `속도`와 `시점` 때문일 것이다.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증진을 위한 입법이 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그 입법 과정까지 엄중한 공론과 숙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상식적인 법 개정은 속도전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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