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첫날 한국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통화를 앞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 `균형 외교`가 지난 5일 빠르게 시험대에 오르는 모습이다.
백악관은 최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국내 언론의 질의에 "미국과 한국의 동맹은 여전히 철통같다"라며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다만 백악관은 "한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진행됐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에 대해 여전히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장만으로는 미국이 중국의 한국 대선 개입을 기정사실화 하는 듯하다.
백악관의 메시지는 관례적 수준의 축하 인사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중국을 향한 공격적 메시지이자 한국을 향해 `중국에 가까이 가지 마라`는 경고를 던지는 듯한 입장으로 해석되는데 이런 톤의 입장을 동맹국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에 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심지어 백악관은 국무부와도 결이 다른 입장을 냈다. 국무부는 마코 루비오 장관의 성명으로 "미국과 한국은 상호방위조약, 가치관 공유, 깊은 경제적 유대관계에 기반을 둔 동맹에 대한 철통같은 결의를 공유하고 있다"라며 관례적이고 호의적인 첫 입장을 냈다. 그 때문에 백악관의 메시지가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일각에선 백악관 및 국무부 내부에서 제대로 메시지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같은 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입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사전에 준비해 둔 답변을 찾지 못했다"라며 연단에서 답을 하지 못한 채 내려온 것이 `내부 조율 미스`의 증거라는 것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는 그러나 "결코 실수나 `사고`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외교 채널로 미국에 무슨 뜻으로 이런 입장을 냈는지 확인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분명한 의도가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진의`를 더 파악해야 한다는 취지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백악관이 한국의 대선 결과를 두고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에 우려를 표명한 데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의에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어떤 국가의 내정에도 간섭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향해서는 "중한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라고 비판했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도 밤늦은 시간까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엑스(X)에 글을 올려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라며 "중국이 타국의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며 중국과 다른 국가 간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이 숨어 있다"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미국과 중국이 하루 동안 보인 모습은 곧 양국이 한국에 `태도를 정하라`라는 노골적 청구서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게 한다.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은 이날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한미, 한중 정상의 첫 통화에서 심화할 수 있다. 양국 정상 모두 통상적인 수준의 인사를 넘어 구체적 `요구 사항`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화답`의 수위도 중요한 상황이 전개된 듯하다.
이 대통령이 당장은 `관세 전쟁`과 안보 협상 상대국인 미국에 `친중` 이미지를 주지 않는 외교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본격적인 관계 설정은 오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의 한중 정상회담을 상정해 미중을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