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가면서 불안과 우울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감정 때문에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할까요?".  이 질문은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과 우울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기며 그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불안은 익숙하지 않거나 위협적인 환경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반응이다. 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되며 `주의하라,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생존에 도움을 준다. 즉 불안은 삶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켜내기 위한 본능적 경보음이라 할 수 있다.  우울은 이미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 반응이다.  절망 속에서도 다음을 준비하라는 내면의 절전 신호다. 마치 비가 오고 폭풍이 몰아칠 때 몸을 움츠리고 조용히 에너지를 비축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불안과 우울은 우리를 해치는 적이 아니라 삶을 지켜주는 `내면의 수호자`다. 따라서 이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불안과 우울이 지나치게 커지면 삶을 흔들고 상처 입히기 시작한다. 잃을까 봐 불안해하고 실제로 잃었거나 더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울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불안과 우울의 뿌리에는 `상실`이 자리한다. 무엇인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감정이 불안이고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우울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과 우울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고 강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질수록 더 갖고 싶다는 욕망에 젖어들며 더 많이 채우고 싶어 하고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천석꾼은 천 가지 근심, 만석꾼은 만 가지 근심`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더 많은 것, 더 새로운 것을 가지려 하는 `과소유 증후군`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소유 증후군`은 타인과의 비교심과 결합되면서 욕망과 집착 그리고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더욱 증폭시킨다. 나아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사람들은 불안에 빠지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며 우울에 사로잡히게 된다. 본래 세상은 누구에게나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구에게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래와 과거마저 내 뜻대로 통제하려는 마음은 결국 또 하나의 `과소유`라 할 수 있다.  삶은 통제가 아니라 수용이다.  잠깐 아프리카의 한 부족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들은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좁은 항아리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넣어두고 조용히 기다린다. 바나나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곧장 달려와 항아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바나나를 움켜쥔 채 그 손을 그대로 빼내려 한다. 그러나 바나나를 꽉 움켜쥔 탓에 손이 항아리 입구를 빠져나오지 않는다. 결국 원숭이는 원주민에게 목덜미를 잡히는 순간까지도 손을 놓지 못한 채 쩔쩔매다가 그대로 붙잡히고 만다.  이는 원숭이의 집착과 탐욕을 역이용한 사냥법이다. 원숭이가 움켜쥔 손을 펴서 바나나를 내려놓고 도망치기만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이치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과소유`가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탐욕이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명확히 보이는 일도 정작 당사자는 그 움켜쥔 손으로 인해 더 소중하고 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자. `과소유`의 미래에 매몰되면 우리는 불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과소유`의 과거에 사로잡히면 우울의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가 움켜쥔 그 무엇을 내려놓을 때 불안과 우울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지켜주는 수호자이며 방향을 알려주는 조언자가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과거의 상실에도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함몰되지 않고 현재(present)에 집중할 때 그제야 비로소 그 현재는 우리에게 진짜 선물(present)이 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