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와 좌절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며 그 결과 마음의 평정이 깨지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때 우리는 불안과 내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심리적 기제를 동원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마음의 안정과 평정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내적·외적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사회적·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갈등이 내면에 생기면 이는 하나의 위협으로 인식되어 불안을 유발하게 된다.  우리 뇌는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심리적 평정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동원한다.  이를 정신분석에서는 `대응 전략` 또는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방어기제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정신병리적 상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일상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이 방어기제 중 하나가 `투사(projection)`이다. 투사는 자신의 내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 감정, 충동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무의식적 심리 작용이다.  `투사`라는 용어는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을 보고 그것이 스크린 자체에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에서 유래했다.  투사는 내면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시적인 완충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심리적 고통이 극대화되는 것을 막고 일시적인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게 되며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거나 해결할 기회를 잃게 된다.  또한 투사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고 이는 결국 관계의 악화로 이어진다.  결국 투사는 심리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식이지만 대인관계와 삶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투사를 부적절하게 반복하거나 과도하게 사용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병리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투사를 사용하고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삶의 무게에 지쳐 힘겨워한다. 사람들은 배우자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상사 때문에, 동료나 친구 때문에, 부하 직원 때문에, 자신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한다.  특히 일이 잘못될 때, 삶이 힘들 때 우리는 쉽게 남이나 환경을 탓하게 된다. 흔히들 말한다. "잘되면 내 덕,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예를 들어보자. 한 학생이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잠이 들어버린다. 어머니에게 아침에 일찍 깨워달라고 부탁해 놓고도 정작 아침에는 계속 자고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고는 시험을 망친 뒤 "일찍 깨워주지 않아서 그렇다"며 어머니를 탓한다.    이러한 투사는 직장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평소에는 직원들의 보고에 무관심하던 상사가, 윗선의 질책을 받은 뒤에야 해당 직원을 불러 호통을 치는 경우가 있다. 보고서를 잘못 썼다며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하는 모습이다.   투사는 일반인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방어기제이지만, 정신병 환자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피해망상과 연애망상이 투사의 전형적인 형태이다.환자 스스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고 있다고 믿는 피해망상은, 실제로는 자신이 특정 인물을 미워하는 감정이 투사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감정은 외부 인물에게 전가되어, 그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고 해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환된다.연애망상은 유명 인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증상이다. 주로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 같은 인기 연예인들이 그 대상이다. 사실은 환자가 그 인물을 향해 품고 있는 애정이 투사되어, 마치 그 유명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상상하게 되며, 결국 그 믿음을 현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이처럼 투사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개인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병들 수 있다.요즘 들어 매사에 남을 탓하는 풍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그 사람의 잘못이므로 그 사람이 변해야 한다.” 심지어 명백한 잘못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책임을 성찰하기보다 남을 탓하는 데 급급하다.물론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자신을 탓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비록 타인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오롯이 남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곧 남이나 환경이 바뀌기 전에는 내 인생도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내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는 ‘타인 의존적 삶’이지, ‘자기 주체적 삶’이 아니다.문제의 책임을 모두 외부로 돌리는 태도는, 결국 변화의 주도권마저 남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타인이 바뀌기 전에는 내 삶도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는 ‘자기 주체적 삶’이라 할 수 없다.《논어》와 《맹자》에서도 이와 같은 태도를 분명히 경계하고 있다. “소인은 일이 잘못되면 남을 원망하고 하늘까지 탓하지만, 군자는 먼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본 뒤에 외부를 살핀다”라고 하였다.예수님의 가르침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구나. 너의 눈에서 들보를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형제의 티를 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자기반성보다는 남을 탓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핵심은 ‘불취외상 자심반조’(不取外相 自心返照), 즉 “바깥 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추라”는 데 있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생기면, 바깥 모습(外相), 다시 말해 남 탓을 하기보다 ‘자심반조’, 곧 자기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이다.사실 정신치료란, 자신의 문제를 남이나 외부로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거둬들여 ‘자심반조’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자기 주체적 삶’이란, 투사를 멈추고 스스로의 마음을 성찰하는 삶이다.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통해, 우리는 오늘보다 더 건강한 삶에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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