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 감정 양식(Childhood Emotional Pattern)`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도 관련 분야를 공부한 이가 아니라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동기 감정 양식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주로 0~6세의 초기 아동기 경험에 의해 형성되며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아 평생 동안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무시감`을 느끼며 자란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집안에서 남동생은 언제나 중심이었다. 식사 자리에서도 맛있는 반찬과 고기는 남동생에게 먼저 돌아갔다. 남동생은 안방에서 어른들과 함께 식사했지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마루에서 식사하는 것이 당연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녀의 아동기 감정 양식은 `나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무시감`을 핵심감정으로 자리 잡게 했다. 아동기 감정 양식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인이 된 후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며 무의식적으로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앞서 소개한 여성의 사례를 통해 아동기 감정 양식이 성인의 `현재 상황 방식(Current Life Style)`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겠다.
30대 후반이 된 그녀는 오랜만에 여고 동창 두 명과 만났다. 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두 친구가 여중 동창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돼 대화는 자연스럽게 여중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때 2학년 때 선생님 기억나? 정말 엄격했지!".
그녀는 대화가 자신과는 관련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둘이서만 저렇게 얘기하지? 나를 무시하는 게 분명해".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를 눈치챈 두 친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지만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난 항상 무시당해. 얘네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날의 만남은 어색한 침묵과 미묘한 거리감 속에서 끝이 났다. 그 후 그녀는 두 친구와의 연락을 점차 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다음에 또 만나자"고 제안해도 그녀는 바쁘다거나 사정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약속을 회피했다. 두 친구는 그녀의 변화된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세 사람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고 시간이 흐르며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이 상황을 본 그녀는 스스로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역시 그들은 나를 무시했어.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야".
그녀는 점점 그 생각에 사로잡히며 자신의 존재가 친구들에게 의미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녀가 느낀 무시감은 단순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직장과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나는 무시당한다"는 반복적인 생각은 그녀를 점점 더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태도는 대인관계에서 무시감을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아동기 감정 양식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현재 생활 방식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며 대인관계에서 왜곡된 현상을 초래한다. 어린 시절의 감정은 중립적인 상황조차 과거의 감정적 기준으로 왜곡해 해석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인관계의 왜곡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동기 감정 양식은 자기 자신에게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갈등과 괴로움을 야기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6세 이전의 초기 아동기 경험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는 성장 후 다양한 정신질환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어릴 때의 경험, 특히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인 가족관계는 아이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모를 잃고 냉대 속에서 자란 사람, 부모의 끊임없는 불화를 겪으며 성장한 사람 또는 부모의 이별이나 사별로 인해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느끼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후에 성격적 문제, 각종 불안과 우울, 심지어 정신병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아동기 감정 양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은 아니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이를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역사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할 운명에 놓인다". 과거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이다.
이 말은 개인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동기 감정 양식을 깨닫고 그 감정이 현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수정하려는 노력은 곧 개인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서커스단의 어린 코끼리를 떠올려보자. 어린 시절 코끼리는 쇠사슬에 묶여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것을 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성인이 돼 몸무게가 5~7t에 달하는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됐음에도 과거의 무력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쇠사슬을 끊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아동기 감정 양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어린아이가 아니다. 과거의 감정을 인식하고 현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더 나은 삶을 선택할 힘이 우리에게 있다. 이제는 아동기 감정 양식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 새로운 현재 생활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개인 역사를 바로 세우기`의 핵심이다.
정신치료는 아동기 감정 양식을 인식하고 그것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돕는 과정이다. 과거의 감정에 얽매여 왜곡된 현실 속에 머무는 것을 멈추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이제는 과거의 잣대를 내려놓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때다.
당신 앞에는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 삶을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갈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