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예술의 흐름에서 사대부들은 시인이고 지식인으로 직업 화가와는 다른 예술 세계를 형성했다.  재료에서 소박함을 추구해 종이와 먹을 사용하고 비단 채색을 기피했으며 거칠고 서투른 수묵담채를 진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사대부 그림이 이해하기 어렵다.  송대 시인이며 문학가인 구양수(1007~1072)의 시문을 평한 글에서 당시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친구 매요신의 시에 대해 쓴 글을 보자.  "근래에 쓴 그의 시는 담백하고 엄격하다. 조금 씹어보면 입 속 가득히 쓰구나. 처음 읽으면 마치 감람 열매를 먹은 것 같지만 오래 음미하면 할수록 더욱더 좋은 맛이 난다".  사대부들의 예술이 독창적인 것은 그들의 인격을 작품에 표현했기 때문이다.  매난국죽이 송대에 독립된 화목으로 인식되면서 문인들이 애용했다.  표현 기법에서 송대 이전에 구륵(鉤勒) 전채법으로 그려지다 이후에는 수묵 담채와 몰골법으로 그려지며 선기법의 백묘법이 표현됐다.    대체로 삼우도, 송죽매(松竹梅), 고목죽석(古木竹石), 매죽(梅竹) 등의 조합으로 표현됐다.  소동파, 문동, 미물 등에 의해 문인화의 표현 가치를 높였으며 그 사람의 인격, 학문, 성품의 인식으로 인해 한층 성숙된 가치를 형성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