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지명은 신라시대에는 고사갈이성, 관현(冠縣), 관문현(冠文縣)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관산현, 고려시대 때는 문희(聞喜)였다가 문경(聞慶)으로 바뀌어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문경(聞慶)으로 불리어왔다.  문희, 문경은 들을 문(聞), 기쁠 희(喜), 경사 경(慶) 자로 기쁘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기분 좋은 지명이다.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바라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나 전국의 보부상들이 대박을 꿈꾸며 팔도를 다닐 때 주로 이용했던 고갯길이 문경새재다.  한양으로 가는 대표적인 큰길로 추풍령, 문경새재(조령), 죽령이 있었지만 속설에 의하면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가면 죽 쓴다거나 죽 미끄러진다고 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으로 가는 길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인지 예로부터 문경은 기쁜 소식을 듣고 경사스러운 일의 조짐이 있다는 뜻으로 `문희경서(聞喜慶瑞)의 고장`이라 했다.  그리고 또 문경에는 `문경삼관(聞慶三關) 대한삼경(大韓三慶)`이란 말이 있다.  선견지명이 있는 옛사람들이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 풍토와 지형, 천문지리를 관찰해 미래를 미리 짐작해 숨은 뜻을 지명(地名)을 통해 전한다는데 그래서일까?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관문 3개 있고 그 문경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큰 경사 소식을 3번 듣는다는 예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첫 번째가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몽진해 인근을 순행 중 문경 주흘산 어류동(御留洞)에 머물 때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 제1경이며, 두 번째는 주역학의 종장(宗長) 야산(也山) 이달 선생이 지리산에 계실 때 멀리 문경 쪽에서 서기가 비치므로 천기를 받아 나라에 경사가 있을 징조임을 알고 1945년 8월 14일 전국의 제자들을 문경으로 모이게 해서 꼬끼오! 꼬끼오! 하며 닭춤을 추었는데 이를 보고 제자들이 영문을 몰라 했으나 그다음 날 광복의 기쁜 소식을 들은 것, 다시 말해 꼬끼오! 닭이 울어 새날이 밝았다는 신호를 보낸 조국광복의 제2경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나라의 경사 제3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처럼 남북통일이 될 것인데 그 소식도 문경에서 제일 먼저 듣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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