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거대한 영화 스크린과 같다. 같은 장면도 바라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한쪽은 불평한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우리 집안은 왜 이럴까.”, “직장은 왜 지옥 같을까.”, “내가 태어난 나라 꼴은 왜 이런가.”   다른 쪽은 감사한다. 오늘도 숨 쉬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부르면 대답해 주는 부모가 있음에 감사하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태어난 조국이 있음에 감사한다.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불평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한 주부가 있었다. 남편이 주말마다 사냥·낚시·골프에만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자, 마침내 남편을 판다는 광고까지 내었다. “남편을 염가로 양도합니다. 사냥도구와 개 한 마리, 골프채는 덤으로 드립니다.” 흥미롭게도 전화는 쏟아졌지만, 정작 남편을 원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낚시도구와 개, 골프채만 따로 얻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한 미망인이 말했다. “남편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라.” 또 다른 주부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 남편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남편을 잃었거나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그 주부의 불만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푸념처럼 들렸을 것이다. 감사의 마음이 사라지면, 우리의 삶은 불평으로 가득 찬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의 삶은 불행으로 기울고, 감사하는 이들의 삶은 행복으로 채워진다.“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기록된 말씀이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는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될 때 진정한 힘을 가진다. 미국인들은 “감사합니다(Thank you).”라는 말을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주 사용한다. 반면 우리는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표현에는 서툴고 인색하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고맙다”는 말을 아낀다.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변하고, 그 당연함이 감사의 마음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이기에, 가족이기에 감사의 말은 더욱 필요하다. 나아가 이웃에게도, 사회와 세상 전체에도 감사의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이와 반대로 움직일 때가 많다. 작은 불편에는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작은 고마움에는 말없이 지나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감사는 말로 표현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불편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루고, 고마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하는 습관이 관계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얼마 전,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던 일이 있었다. 한 고객이 창구 직원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했지만, 그는 처음과 같은 미소로 끝까지 성심껏 답했다. 그 모습이 유난히 인상 깊었고, 감동했다. 만약 그가 불친절하게 대응했다면, 그 불편은 고객뿐 아니라 주변 모두의 마음에 오래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태도 덕분에 불편은 잔잔히 흘러갔다. 작은 친절이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예의를 넘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내 업무를 맡은 다른 직원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조금 전 느낀 감동과 감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웃으며 ‘전하겠습니다’라고 답했고, 나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최근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른 은행에서 업무를 마친 뒤 1층 카페에서 아이스 카페라떼를 주문해 나오려던 순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전 내 업무를 도와준 은행 직원이었다. 은행 직원은 말했다. “말씀하신 업무 중 하나가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마감 시간이 지났지만, 정문 벨을 누르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한 잔 더 사서 은행으로 돌아갔다. “마침 커피를 주문하고 나오려던 순간 전화를 주셔서, 한 잔 더 가져왔습니다.”   직원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짧은 웃음 속에서 감사가 오갔고, 업무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업무를 왜 빠뜨렸느냐”며 화를 냈거나, 직원이 마감이라며 거절했다면 우리는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친절은 나를 움직였고, 내가 건넨 커피 한 잔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을 것이다. 감사와 배려는 ‘교환’이 아니라 ‘확산’되는 것이다. 뇌과학 연구는 감사의 힘을 뒷받침한다. 감사의 마음은 면역력을 높여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한다.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cortisol)을 낮추고, 불안과 우울을 줄이며 행복감을 높인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탈무드》는 이렇게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불만과 감사는 함께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감정에 더 집중하느냐에 따라 삶의 풍경은 전혀 달라진다. 감사할 일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자녀를 보며 불평하다가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의 소식을 접하면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가 밀려온다. 작은 것, 가까운 것에서 만족을 배울 때 우리의 가슴은 감사로 차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 감사한 일이 있었는가? 지금 단 세 가지만 떠올려 보라.” 삶을 지탱해 주는 일상의 대부분을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는 사라진다. 그러나 행복은 특별한 순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만족의 기준을 조금만 낮춰보라. 그러면 감사할 일은 자연스레 늘어나고, 행복은 더 깊어지며, 몸과 마음은 더욱 건강해진다. 가족, 이웃, 직장의 동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택배를 전해주는 기사와 동네 가게의 점원까지. 우리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 자연 또한 감사의 스승이다. 숨을 쉬게 해주는 공기, 봄의 꽃과 여름의 나무, 가을의 열매와 겨울의 뿌리에도 감사할 수 있다. 감사는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결국, 감사는 가장 강력한 행복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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