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마음 깊이 평온함을 느낍니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평화는 너무도 익숙해 가끔은 그것이 마치 당연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고요한 일상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 한반도는 전쟁의 참화 속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을 잃는 슬픔,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고통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이곳을 향해 달려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조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유엔 참전국의 젊은 병사들입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즉시 대한민국을 돕기로 결의했고 총 22개국이 우리를 위해 함께 싸웠습니다. 16개국은 전투병력을 파병했고 6개국은 의료와 물자를 지원하며 전장에서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낯선 언어와 문화,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돼 총성이 멎고 평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폐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섰고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점에는 분명히 이름도 얼굴도 모를 수많은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렸고 우리를 위해 젊음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국가보훈부는 `국민이 존경하고 세계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을 실현하기 위해 유엔군 참전용사와 그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습니다. 참전국들과의 외교적 협력을 통해 보훈 외교를 이어가며 후세대가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도록 다양한 교육과 기념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엔군 참전의 날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추모 행사, 사진전, 유해봉환,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유엔 참전국들과의 우호 관계를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처럼 우리를 도왔던 국가에 의료시설과 생활지원을 제공하거나 칠레, 필리핀 등에서는 후손 장학사업을 통해 참전의 가치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를 넘어 `기억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보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질문해 봅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평화는 과연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희생에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들을 떠올리고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진심 어린 예우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켜낸 어제, 우리가 피워갈 내일.
그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진 평화가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