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진 남북조 시기를 되돌아보면서 자연 수양의 도교사상을 추종하는 시대에서 인물화 위주의 그림을 점차 산수(山水) 그림에 많은 관심과 참여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자연에 내재한 정신 속에는 사계절의 순환과 자유로운 유연함이 녹아있다.
이 시기의 인물화에서 붓 놀림 표현이 섬세하고 유연함이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낙양의 서한 벽화, 후한의 벽화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엿볼 수 있다.
고개지(344~406년)의 `화운대산기`는 이상성을 바탕으로 그려졌으며 산수화의 시조라 불리는 종병의 `화산수서`는 산수를 직접 체험하고 보고 그렸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회화에 지적 문인들의 참여에서 사혁(謝赫), 종병(宗炳), 왕미(王微)의 출현은 미술 이론, 비평에 산수화의 영역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