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저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고 삶의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놀랍게도 그들은 무기력하고 암담한 삶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는다. 상당수가 삶의 주체인 자신 대신에 정치인들을 탓하며 비난하는 것을 수없이 봤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에게 투표는 하고 정치인을 비난하는지 물어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십중팔구 "해서 바뀌는 게 뭐가 있나?"라는 되물음이었다.
`정치효능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개개인의 정치적 참여가 실제 제도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뜻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 국민이 갖는 정치효능감은 아주 낮다.
나 한 사람의 목소리와 한 표로는 세상의 변화를 불러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같은 이유로 투표권이 주어진 이래 그 권리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포기했다. 게다가 주변인들과 이야기해 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정치효능감이 낮은 사람들은 어느 정당의 어느 후보든 모두 똑같이 부패했고 그들이 선거운동 기간동안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부르짖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삶에 어떤 영향도 없이 내 처지는 항상 같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정치적 불신에서 비롯한 정치효능감 저하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정치적 무관심이든, 정치권에의 실망에 대한 반항의 한 형태이든, 자신의 투표권을 포기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우리가 비판하는 정치인들은 적어도 선거운동 기간 때뿐이라도 표심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며 시장판의 어묵도 먹고 사람들도 만나며 자기에게 주어진 노력을 한다. 그것이 일개 보여주기식 `쇼`일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내 권리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도 쉽게 포기해버리는가.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들의 표라는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내 한 표를 스스로 버리는가. 한 표를 무기로 그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만들 기회를 잡지 않는가.
다가오는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무관심과 불신에 가득차 소중한 투표권을 무가치하게 버리는 유권자가 아닌, 최선과 차선, 차선과 차악, 그 판단을 위해 고민하는 유권자로 깨어나길, 그리고 그 고민이 담긴 선택의 결과로 투표함이 가득차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