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이 속한 6월은 지난 1985년부터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호국보훈이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의 `호국`과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의 `보훈`이 합쳐진 말로 6월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위훈을 기리는 의미 있는 달이다.  올해는 경북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된 후 처음 맞는 호국보훈의 달로 낙동강 방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구·경북에 더욱 의미가 크다. 제69주년 현충일을 맞아 6·25전쟁 속 낙동강 방어 전투와 대한민국을 수호한 호국경찰을 소개하려 한다.  지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40여일 만에 경상도와 일부 지역을 제외한 우리 국토의 90%가 점령당해 대구·부산을 거점으로 낙동강 방어전선이 구축됐다.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에서 경찰관 6천800여명이 북한군 4개 사단과 격돌해 함안지구를 지켜냈고 칠곡 다부동 전투를 비롯한 군위군에서는 매봉산 전투, 화산 전투 등에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내며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현장에는 호국경찰 영웅이 있었다. 6·25전쟁 최초 전사자로 기록된 전대욱 경사를 비롯해 춘천 내평지서 노종해 경감은 불과 10여명의 인원으로 3천명의 북한군에 맞서 진격을 한 시간 이상 저지해 국군의 방어선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 경남 산청에선 강삼수 경위가 유격대 10여명으로 북한군 322명을 물리치는 등 총 62회 전투에서 놀라운 전공을 세웠다.  물론 이름 모를 호국경찰 영웅 또한 많다. 개전 초기 변변한 무기도 없이 싸워야 했던 1만5천명의 경찰관은 유엔군에 배속돼 함께 전쟁을 치렀고 일부 경찰관들은 특별훈련을 받은 뒤 `화랑부대`라는 이름으로 재편돼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등에 참전해 압록강까지 진출했으며 미 해병과 함께 영하 40도의 극한의 추위 속에서 `장진호 전투`에 참가해 호국정신을 발휘했다. 전쟁 기간동안 전사·실종·부상 경찰관은 당시 전체 경찰의 1/3에 해당하는 1만7천여명으로 수많은 경찰관이 전장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이처럼 국토방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은 오물풍선 살포와 GPS 교란행위 등의 비이성적인 도발행위를 일삼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애국심을 기반으로 한 국민적 단합이 더욱 절실하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해 낙동강 전선에 배수진을 치고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 영웅들의 마음을 되새기고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숭고한 경찰정신으로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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