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북과 영남 지역을 강타한 초대형 산불은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일깨웠다. 일주일 넘게 계속된 이 산불로 31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다쳤으며 약 10만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됐다.
이는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의 약 4배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이제 산불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할 때이다.
기존의 산불 대응은 `불이 나면 끄는` 단순 대응 방식이었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는 이런 방식으로는 점점 대형화되는 산불을 막을 수 없다. 가용 자원 부족으로 전국적 소방 동원령이 발동됐고 초기 감지와 대응이 지연돼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특히 야간에는 장비와 전략 부족으로 효과적인 진화가 어려웠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도 야간 소방 장비 부족을 지적하며 밤에는 오로지 인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이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진압 대원의 위험 노출을 최소화하고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진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의 산불 대응은 발생 후 진화에만 중점을 둬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은 산불 위험 예측부터 조기 감지까지 선제적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 2022년 광주과학기술원과 미국 연구팀은 대형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은 기상 조건을 최대 1주일 전에 예측하는 AI 모델을 개발했으며 산림청은 34년간의 데이터를 활용해 한 달 뒤의 산불 위험을 예측하는 장기 예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AI 예측 기술은 산불 대응의 골든타인을 확보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산불 현장에서 드론은 험준한 지형이나 접근이 어려운 지역도 자유롭게 비행하며 정보 수집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은 연기나 야간 상황에서도 산불의 위치와 범위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카메라로 수집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산불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드론을 현장에 투입해 화재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더불어 드론은 인명 대피 유도에도 활용할 수 있다. 산불로 인한 연기와 어둠 속에서도 스피커를 장착한 드론이 주민들에게 대피 경로를 안내하고 구조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 앞으로 드론은 주민 대피로 안내, 위험 지역 내 잔류자 수색, 산불 확산 방향과 속도 감시 등을 통해 뒷불 정리와 추가 대피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이 발전해도 현장의 주체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산불 진화 인력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대형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함에도 이를 전담하는 전문 소방대가 없어 일반 소방관과 산림청 진화대원이 임시로 동원되는 실정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진화 인력의 95%가 비전문 인력이라고 한다.
산불 전담 소방대가 창설되면 전문화된 훈련과 장비 운용으로 초동 대응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이들은 평소 위험 지역 순찰과 주민 예방 교육을 전담하고 산불 발생 시에는 신속한 현장 지휘와 진화 전략 수립으로 초기 진압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전담 조직은 드론, 무인헬기, AI 시스템과 같은 첨단 장비를 효율적으로 통합 운영할 수 있다.
대형산불이 일상의 재난이 돼가는 지금, 인력 위주 대응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제는 기술을 활용한 첨단 통합 대응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이미 성공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AI로 24시간 산불 감시망을 구축했고 호주는 야간 무인 진화 헬기를 실전 배치했으며 캐나다는 드론과 AI로 산불 위험지도를 제작해 사전 대응하고 있다.
산불은 자연재해이지만 대응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첨단 기술 도입과 전담 소방대 운영에는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수천억원대 피해와 귀중한 생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이는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다. 다만 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조직이 부족할 뿐이다. 우리는 첨단 기술과 전문성을 결합한 새로운 산불 대응체계를 구축해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