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거부권과 입법 폭주가 맞섰던 21대 국회 후반기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런 난장판이 22대 국회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들 했다.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금 당시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듯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법제사법위원회를 비롯한 운영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통상적이라면 원내 2당이 가져야 할 법사위와 여당이 맡았을 운영위 모두를 `집권 야당`이 손에 넣은 것이다.
`헌정사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러 번 득한 뒤에 민주당은 국회를 사실상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의원 300명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에 `여의도 대통령`이 따로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야당의 무도를 탓할 일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빌미를 줬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14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집권 2년 만에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다 거부권 행사 신기록을 세웠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 체계상으로 비상 수단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는데 소홀했다.
반대로 이토록 거부권이 많이 행사된 데는 야당의 입법 폭주가 있었다. 여야 간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성긴 법안들을 밀어내듯 통과시켰다.
민주당의 원 구성 일방 처리에 대통령실이 전날 민주당을 겨냥해 "힘자랑 일변도의 국회 운영을 고집한다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명분은 더 견고해질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1일 "민주당이 대화와 타협이란 의회민주주의 본령을 외면하고 힘자랑 일변도의 국회 운영을 고집한다면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 명분은 더 견고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1당이 국회의장을 맡으면 2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을 맡는 관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 주도해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확립한 소중한 국회 운영의 전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어렵사리 확립한 국회의 관례와 전통은 어떤 면에서는 국회법보다 더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지적했다.
입법 폭주와 거부권은 모순 관계다. 양립할 수 없다.
극한 대립이 극단적 수단을 정당화하는 악순환을 해소해야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없어도 살 사람은 산다지만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게 또 정치다.
창과 방패는 동시에 내려놔야 협치가 가능하다. 국민은 22대 국회에서 여야 협치와 대화의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골수 지지층과 대권만 바라보고 투쟁하는 것은 민심을 배반하는 길이다.
여야는 어떤 경우라도 대화 테이블에 앉아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소통과 타협, 견제와 균형이 정치의 기본 원리이다.
모든 국민이 여의도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