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는 왕유의 그림을 통해 시(詩)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에 남종화의 근간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명간(鳥鳴澗, 골짜기에 새가 울다): 사람이 한가하니 계수나무꽃 떨어지는데 고요한 밤이 되니 봄산이 텅 비었네. 달이 뜨니 산새가 놀랐는지 봄 골짜기 속에서 수시로 우는구나.
조명간을 통해서 왕유의 세계관을 볼 수 있으며 이는 남종화의 초기 바탕을 이룬다.
이러한 흐름은 화원이나 직업화가들의 정밀한 공필(工筆)의 그림에서 문인들의 고매한 여흥에서 우러나는 담채의 그림으로 바뀌게 되며 송대 문인 서화가들에 의해서 전개된다.
자연의 식물이나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 의인화하거나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詩), 서(書), 화(畵)에 능통한 문인을 삼절(三絶)이라 칭한 것도 자연과 사물에 빗대어 그 특성을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과 학문이 조화를 이루고 사상을 추구하며 운율과 영감을 대자연에서 찾았다.
송대에 학문을 숭상하는 정책으로 연구가 번성했으며 문인 사대부들이 매난국죽에 자신의 의미를 담아 군자의 상징성을 부여했다.
또 시와 그름을 함께 표현하는 흐름이 활성화됐다.
소동파의 주죽(朱竹)을 통해 사물의 사실에서 벗어나 사물의 마음을 담아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조맹부(1254~1322)는 송·원대 대표 서화가로 시, 서, 화에 뛰어났다.
과목죽석도( 木竹石畵)에 수묵담채 기법과 문인의 취가 담겨있다.
남송대 매죽작도(梅竹雀畵)의 조용한 공간에서는 새들의 소리가 나는 여운을 준다.
자연의 형상을 통해 내면의 정신성을 표현했다. 외경(外境)에서 내의(內意)를 끌어내는 표현들이 성숙한 사군자 정신을 이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