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의 생태적 특성이 맑은 정신과 절개의 상징으로 군자향(君子香), 유곡가인(幽谷佳人)으로 인식됐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인이면서 절개의 시인 굴원(屈原, 기원전 340~278)은 도가 사상과 주관적 표현의 낭만성을 표출했으며 중국 문학에 서사시의 새 장르를 만들었다.
한대 이후 시인들에게 영향을 줬으며 대표적인 시 이소(離騷)는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으로 초나라 회왕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물러나 벽라강에 목숨을 던졌다. 그의 애국을 반영한 시의 일부를 보자.
내 이미 아름다운 자질을 가득 지녔는데 또 그 위에 좋은 재주를 보탰도다.
강리와 벽지를 봄에 두르고 가을 난초 엮어서 허리 장식 삼았도다.
애국과 절개의 주관적인 낭만성이 삼방문학의 초사(楚辭)의 시에 처음 나타나며 부패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도가적 인격, 진리 추구의 정신을 보여준다.
굴원이 쓴 "난초 묶어 놓고 목 늘이고 바라보고 섰네"라는 글은 난과 더불어 절개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남송대 화가이면서 시인인 정사초(1239~1316)는 호가 소남(所南)으로 송 종실의 조(趙) 자의 일부를 사용하는 사초(思肖)라 해 충절을 표현했다.
북방 금나라에 의해 송이 멸망하고 유랑하며 이민족에 빼앗긴 나라의 울분을 노근난(露根蘭)을 그려 복고주의를 외쳤으며 민족 애환이 담긴 정사초의 난은 조국을 표현했다. 뿌리를 드러낸 사초의 난은 후대에 충절이 회자되며 난을 그렸다.
제화란(題畵蘭) 온 나라를 상징하는 향기 온 나라를 위해 죽은 충혼이구나 저 회왕을 그리워하니 초나라에 광명 있으리
공자의 말과 행실을 기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의 난초를 보자.
지초와 난초는 깊은 숲 사람이 없어도 꽃을 피우며,
군자는 덕을 닦아 곤경에 처해도 절개를 바꾸지 않는다.
난초 고사의 절개는 문인들의 이상에 맑은 정신을 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