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와 의사협회 및 간호조무사협회 등 의료인 간 갈등의 불씨가 된 간호법을 두고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직역끼리 싸울 이유도 없고 또 제정된다고 의료현장에 크게 바뀔 내용은 없다고 했다.
의사협회와는 거리를 둔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의협 주장대로 간호사가 간호법으로 단독 개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사 등 13개 단체와 간호계가 극단적으로 맞선 데에는 우선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의료법이 허술해서다.
의료법은 의사 업무를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단 한문장, 간호사의 업무는 △환자의 간호 △의사 등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 등 4문장에 그친다.
업무 범위를 정하는 절차도 투명하지 않아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왔다. 구체적이지 않으니 의사 수 부족으로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불리는 진료 지원인력이 1만여명 생겨났고 가끔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한테 벌주는 방식으로 무마했다.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간호사를 중심으로 업무 범위를 정한다면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이 침범당할 우려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규칙이 허술한 데다 그 규칙을 정하는 심판은 딴짓만 하니 환자를 앞에 두고 팀원끼리 다툼이 심할 수 있다.
간호계의 `준법투쟁`은 병원과 의사 사이에 낀 간호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읊은 대리처방, 대리 수술,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L-tube 및 T-tube 교환, 기관 삽관, 봉합, 수술 수가 입력 등은 의사 또는 의료기사의 일이다.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정하는 법과 제도는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의료, 요양, 돌봄 수요가 급증할 테니 이에 대비한 통합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중지를 모아 논의해야 한다.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정하되 유리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국민과 전문가를 참여시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에 간호법 재의(再議)를 요구했고 간호협회는 19일 오후 2시 광화문에서 가진 규탄대회를 통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의 파면을 촉구했다.
이날 대구·경북지역 상급종합병원과 중소병원, 동네 병의원, 간호과 학생 등 3000여명이 참석해 면허증도 반납하겠다고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노동계도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갈라치기`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당국자들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반성하며 각계 의견을 경청할 때다. 간호법은 최적의 대안이 아니라는 회피보다 간호법이 생길 때까지 의료법 개정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며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정치권도 간호법으로 촉발된 갈등을 정쟁으로 활용하지 않고 의사 수 부족을 비롯한 필수 의료·지역의료 현안, 간호사 업무 과부담 호소를 해결해 줄 대안 마련에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 야당도 여당도 문제다. 정책 입안자들은 간호법 갈등으로 더 나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계기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