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잠든 소담한 골목.하늘밑에 머문 시선을 따라 줄을 지어선 기와의 행렬.자홍빛 바닥위로 거니는 소소한 발걸음에도 고즈넉한 바람이 인다.시간과 역사, 추억을 품은 이곳은 경주 황남동의 고도지구 골목.이곳에 이현세 화백이 있다.지금 이 시대를 움직이는 세대에게 있어 하나의 상징이 된 독보적인 만화가.만화라는 그릇 안에 다양한 인간군상의 욕망과 의지, 역사의 소용돌이를 담아낸 불세출의 작가.그가 이 황남동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이곳에 조성될 <이현세 테마거리>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테마의 주인공이 직접 발걸음을 행한 것이다. 그가 가는 족적을 따라 맨 얼굴을 드러내며 그를 맞이하는 황남동의 정취. 그렇게 경주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황남동의 거리는 기지개를 펴며 이현세의 자취를 품었다.
비록 출생지는 아니지만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한 이곳 경주는 이현세에게 있어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이날 함께 황남동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이현세 화백은 그러한 경주에 대해 많은 애착을 보였다. 또한 포털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는 출생지인 울진은 본적일 뿐이며 실제 출생지는 경북 포항시 흥해읍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뿌리에 대한 깊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 경주에 만들어질 <이현세 거리>는 그의 삶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핫 플레이스(hot place)가 될 것이다. 또한 경주에 있어서도 오로지 역사문화유적에만 집중되어 있는 식상한 관광자원을 탈피할 수 있는 중요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음이다. 나아가 이 거리가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성장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대구 방천시장에 들어선 김광석 거리가 대구의 랜드마크가 되리라 그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간 경주 출신의 유명한 출향인은 많았다. 그러나 이현세 화백만큼 명징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이도 드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도 흔치는 않다. 해서 이현세 거리는 응당 경주에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 위치가 추억을 머금은 정취어린 마을인 황남동에 들어선다면 그 시너지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라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도시 경주에서, 특히 가장 경주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황남동의 고도지구에 <이현세 테마거리>가 조성됨은 경주의 역사적 정체성에도 맞지 않고 황남동 특유의 정서에도 위배된다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무엇인가? 단지 아득하게 멀어진 과거를 복기하는 것만이 역사는 아닐 것이다. 역사라는 정의에는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시점 역시 포함된다.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영위하는 순간순간이 곧 역사이며 개개인의 삶이 모여 순행되는 철학 역시 역사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굳이 역사에 대한 폐쇄적인 사고의 틀 안에 관광자원을 가두어 평가함은 온당치 못하다 판단된다. 지금부터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역사란 뜻이다. 특히 황남동의 거리가 단순히 옛 정취를 품은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 뿐, 신라와 서라벌의 대표적인 정서를 머금은 곳은 아니지 않은가!따라서 이러한 모든 상충되는 지점을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스토리텔링이다. <이현세 거리>를 조성함에 있어 어떻게 스토리텔링하고, 어떻게 황남동에 맞게끔 옷을 입히는가는 오로지 스토리텔링에 달려 있다. 특히 ‘이현세’라는 특별한 브랜드는 이미 수많은 스토리텔링이 완성되어 있지 않은가!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이 이미 스토리텔링 되어 있음이며 그 작품들을 기억하는 수많은 남녀노소가 이미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져 있다. 이를 어떻게 배치하고 새로운 옷을 입혀 거리의 곳곳에 콘텐츠화 시키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경주의 정체성과 황남동의 정취에 부합하는 테마거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황남동과 ‘이현세’라는 브랜드는 이미 ‘추억’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고루한 가치판단으로는 미래를 밝힐 수 없다. 또한 모든 조건이 완벽한 곳에서 출발한 콘텐츠는 제 아무리 훌륭한 가공을 해도 완벽한 조건에 가려져 더 밝은 빛을 내지 못한다. ‘애플’이라는 세계 최고의 브랜드파워 기업을 일궈낸 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는 생전에 항상 ‘난 항상 배고프고 난 항상 멍청하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한 점을 인식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관광콘텐츠 역시 그러하다. 다소 완전치 못하고 다소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보완하고 완성시켜 나간다면 기존의 관광자원들을 더욱 더 빛내면서 새로운 관광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음이다. 오히려 다소 부족한 여백이 있어야 그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사유의 폭과 아이디어의 공간이 넓어져 더 훌륭한 콘텐츠로 완성시켜 낼 수도 있다.
이현세 화백은 이날 <이현세 테마거리> 조성을 위해 함께한 사람들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왜 자신이 험난한 만화계에서, 아이들이 시간만 낭비하는 잡기(雜技)따위로 취급되던 편견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는지, 자신의 진취적인 생각들을 표현한 말들과 배려 깊은 행동 속에서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이제는 연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세대가 되었음에도 그의 사고와 논리는 그 어떤 젊은이들보다도 생생히 펄떡이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사고는 틀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논리는 누구보다 합리적이었다.
이제 그러한 그의 의지에 우리 경주가 답을 해야 할 때다. 경주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현세 거리>를 고안해내었고 주인공인 이현세 화백이 화답했다. 하여 한 마음으로 의지를 보이고 한 힘으로 실행하여 경주 스토리텔링 관광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키워야 할 때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취어린 황남동 거리에서 이현세 화백의 작품들에 얽힌 추억과 경주의 정서를 되새기며 거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흥겹다. 연인들이 까치와 엄지가 되어 황남동의 돌담길을 거닐며, 아이들의 고사리손에 이현세 화백의 역사만화가 쥐여지는 정경을 바라는 것은 결코 큰 욕심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얼마든지 추억의 시계바늘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경주를 방문한 그 누구라도 이곳 <이현세 거리>를 방문한 시간만큼은 소중히 간직하고픈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되길 절실히 기대해본다.